[카메라포커스] 제주 4·3길, 개통만 하면 끝?
변미루 기자  |  bmr@kctvjeju.com
|  2021.03.3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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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미루 기자>
"여러분은 제주 4·3길을 알고 계십니까? 4·3 당시의 흔적을 따라 걸으면서 역사를 돌아보기 위해 만든 곳인데요. 직접 길을 걸으면서 운영이나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점검해보겠습니다."

지난 2015년 서귀포시 동광마을을 시작으로 조성된 제주 4·3길.

이후 6년 동안 6개 코스가 개통돼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원희룡 / 제주도지사>
"개통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앙부처와 다른 지자체들과 협약을 통해서 온 국민이 (4·3길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극의 역사가 남아있는 오라마을 4·3길을 찾아가 봤습니다.

가장 최근인 2018년에 조성됐지만 마을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은 벌써 알아보기 힘들 만큼 훼손돼 있습니다.

지도라도 구해 보려 이정표를 따라 4·3센터를 찾아가 봤지만 허탕을 칩니다.

<오라동주민센터 관계자>
"(센터가 어디 있어요?)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맞은편에 없던데?) 센터를 옮겼나..."

알고 보니 안내된 방향과는 정 반대쪽에 센터가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봐도 텅 비어 있습니다.

결국 이정표와 리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숲길에 들어서자 리본은 온데간데없고 방향 모를 길들이 이어져 헷갈립니다.

겨우 도착한 연자방아 터는 안내판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습니다.

<신동원 / 제주다크투어 시민참여팀장>
"한때 반짝하고 관심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에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이후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개선해야 합니다."

금악마을 4·3길은 시작부터 센터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4·3길 센터 관계자>
"(센터 왔는데 안 계셔서요.) 미리 전화 주셨으면 갈 텐데. (지도를 혹시 받을 수 없나요?) 입구 있죠? 팸플릿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보관함은 파손된 상태.

<변미루 기자>
"이쪽에도 지도가 있는데요. 비에 다 젖어서 곰팡이까지 쓸어 있습니다."

지도 한 장 구하지 못하고 맨손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잃어버린 마을들을 지나 한 연못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영문 설명이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지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지원 이소승 / 서울시 용산구>
"(다른 이야기를) 갑자기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설명하면 안 되죠."

<임태현 / 서울시 양천구>
"외국 사람도 왔다 갔다 하니까 당연히 고쳐야죠."

4·3 당시 주민들이 피신했다는 동굴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성용 / 제주4.3문화해설사>
"지금 거의 바위가 내려앉아서 이렇게 막혀있는 거예요. (여기가 굴이에요?) 네. 여기가 굴 입구."

<변미루 기자>
“제가 지금 이 코스를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30분을 넘어서고 있는데요. 겨우 새로운 지점에 도착했는데, 4·3과는 연관이 없는 곳 같습니다.”

돼지고기 가공 공장이 왜 4·3길에 포함됐을까?

<박중현 / 한림읍 금악리>
"모르겠는데? (4.3이랑 포크빌리지랑 연관이 있어요?) 아뇨. 연관 안 됐어요."

<포크빌리지 관계자>
"마을의 볼거리를 4.3길이랑 연결하다 보니까..."

4·3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엉뚱한 지점들은 다른 코스에서도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조선시대 헌마공신 김만일의 묘, 제주로 유배온 최익현 선생의 유적비까지 다양합니다.

<강민철 / 제주도 4·3지원과장>
"마을에서 이런 부분을 4·3길로 해달라고 해서 협의해서 한 부분입니다."

4·3길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도 엉터립니다.

여기저기 그려진 큐알코드는 먹통이고, 따로 앱을 다운받아 봐도 전체 코스의 절반만 업로드 돼 있습니다.

그나마 있는 지도마저 실제 코스와 달라 혼선을 줍니다.

<변미루>
“어플리케이션을 따라 왔는데 다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총체적인 관리 부실 속에 지난해 4.3길 탐방객 수는 각 코스마다 연간 300에서 800명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두 명이 다녀간 꼴입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올레길과는 대조적입니다.

취재진이 6개 코스를 모두 돌아보는 동안에도 4.3길 탐방객은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잘 몰라요. 올레길 19코스 왔어요."

"아니오. 몰랐는데요?"

"아예 몰랐어요."

앞으로 4.3길이 양질의 문화,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관리 체계 재정비가 시급합니다.

<김선금 / 오라동 4.3길 해설사>
"그냥 개통만 해놓은 거예요. 나머지 자질구레한 준비들은 그냥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다 서로 미뤄요. 동에서는 그거 우리 관여 안 한다고..."

<정민구 / 제주도의회 부의장>
"관리가 전혀 안 돼 있어요. 그런 부분을 다시 한번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변미루 기자>
"역사를 기억한다며 혈세를 들여 만든 제주 4.3길. 정작 관리되지 않으면서 취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맹이를 채우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이름뿐인 길이 될 겁니다. 카메라포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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