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TV 4.3 송년기획 네번째입니다.
4.3 어멍들은 서로 의지하며 초토화 작전으로 사라졌던 마을을 재건하고 무너진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4.3 여성 피해가 축소 은폐된 것처럼 4.3 이후 역사에서 제주 어멍들의 생애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4.3 소개령으로 초토화됐던 중산간 마을.
슬레이트 지붕의 돌담집들이 보입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지어진 4.3 이재민 복구 주택입니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주민 150여 명이 희생됐습니다.
6년이 지나, 국가 주도의 중산간 마을 원주지 정착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작성된 난민 정착 보고서.
중산간 4.3 피해 마을이 5만 분의 1 지도에 지명으로 표시됐습니다.
금악리 복구 계획에는 전체 280세대 가운데 180세대가 정착했고 100세대는 이주 예정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금악리 7개 마을로 돌아간 이들은 없었고 피해주민 1천 130명 가운데 몇명이 정착했는지 이 보고서 만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유철인/제주대 명예교수]
"여성들이 마을을 재건하는 거나 농사를 다시 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국가는 그냥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해서 저는 거의 방임 상태였다고 보거든요."
아버지와 남편, 아들은 죽거나 행방불명됐고 마을로 돌아온 여성들에게 남은 건 잿더미가 된 땅 뿐이었습니다.
피해가 심했던 중산간 한 마을은 가정의 70% 이상이 남성이 없는 홀어멍 세대였습니다.
남성의 노동력이 상실된 마을에서 살아남은 어멍들은 함께 했습니다.
물을 길어다 흙을 밟고 벽과 지붕을 올리며 집을 지어갔습니다.
4.3 소개령으로 수용소에 끌려갔고 혹독한 피난 생활을 경험했던 여성과 남은 가족들에게는 더 없이 안전한 보금자리였습니다.
[김춘자 4·3 유족 (88세)]
"흙과 물을 부어서 소하고 사람들이 직접 밟고 말리면서 이 집들을 다 지었어. 그 시절에는 어느 누구 할 거 없이 사람들이 멋지게 살았어요.
하나도 싸우지 않고 한 식구같이 살았어요.
다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니까."
반세기가 넘은 지금도 돌집 벽담에는 당시 어멍들의 손길과 수눌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김춘자 4·3 유족 (88세)]
"끈적끈적하게 범벅처럼 만들어서 벽에 바르면서 아이고 그때 시절에 아이고 우리도 집도 있어. 집 있어도 집 자랑 말아라.
우리도 집 지어서 살고 있어. 그러면서 이렇게 흙질도 한 거야. "
[강경숙 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
"홀어멍들과 그 딸들, 어린 동생들이 힘을 합쳐서 마을을 재건하고 밭을 일구고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돈을 모아서 마을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
폐허된 마을을 재건하고 마을 살림을 책임진 것도 여성들이었습니다.
국가의 지원은 전무했고, 여성들은 십시일반 돈을 보태며 마을을 일궈냈습니다.
어멍들의 이름이 적힌 기금 영수증은 마을을 재건하고 무너진 공동체 복원을 위해 연대했던 생존의 기록들입니다.
[안관홍/한림읍 금악리장]
"그때는 마을이 단합이 잘 됐죠. 서로 살자였거든요.
보릿고개도 있었고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도우면서 살자 했죠. 또 이렇게 재산이 없는 분들은 적게 내도 됩니다. 그렇게 배려도 해서 공동체가 잘 형성된 거죠."
등짐으로 무거운 돌을 날라 길을 만들고 터전을 이룬 마을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렇게 4.3으로 초토화됐던 중산간 마을 300곳 가운데 절반이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1948년 아라동 학살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현경아 어르신도 구산마을 재건을 위해 집터를 만들고 손수 주춧돌을 세웠습니다.
[현경아 4·3 유족 (105세)]
"이 사람은 주춧돌을 밤에 다 세워놓으니 1등 했다고 남들이 다 칭찬하고 나도 성과를 냈고 그렇게 30 세대를 지어서 그 멀리 사는 친척이나 주민들이 모두 이곳으로 와서 집을 지었고 나도 그때 지은 집에 살아.
내가 고생해서 성공해 이룬 거니 고생한 건 생각 안 해."
4.3 홀어멍들은 서로 의지하며 모진 삶을 견뎌냈고 이는 마을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허영선 전 4·3 연구소장]
"이들이 이렇게 강인하게 끈질기게 생존을 위해 이렇게 살았던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온 식구가 굶어 죽는다라고 하는 사랑의 힘이라고 봅니다. 원천적인 게 그거예요."
[강경숙 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
"이 협동과 연대 문화가 없었다면 이 분들은 굉장히 많이 어렵게 살았을 것이고 지금의 제주 사회도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성의 4.3 피해가 축소 왜곡돼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4.3 이후 재건 역사의 주체로서 제주 어멍의 희생과 노동, 돌봄의 가치는 70여년 지난 지금도 제대로 평가받거나 기록되지 않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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