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제주4.3사건이 발발한 지 73주년 되는 날입니다.
올해는 도민과 유족들의 염원이던 4.3특별법이 개정돼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은 추념식을 맞게 됐는데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씻어지지 않는 비극의 고통과 아픔은 도민들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4.3의 사연을 조승원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조천읍 북촌초등학교 교정 한켠에 서 있는 커다란 비석.
북촌주민 참사의 현장이 돼 버린 학교.
참사의 그날, 1949년 1월 17일은 고완순 할머니에게 악몽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4.3 당시 단일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북촌리 학살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당시 숨진 주민만 400여 명.
고 할머니는 70년도 넘은 그날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고완순 / 북촌 학살사건 생존자(83)>
"총소리가 나더라고. 남자 머리가 총소리 나자마자 없어져 버리더라고. 총 맞아서 쓰러진 건가 봐. 그것이 신호였는지 기관총이 불을 뿜어버린 거야."
제주 섬에 4.3의 광풍이 불어닥친 지도 벌써 73년.
최근 4.3특별법 개정으로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이 탄력을 받게 되면서 올해는 그 어느때보다 뜻 깊은 4.3을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의 마음 속 상처는 아직도 가시처럼 박혀 있습니다.
4.3 발발 이후 어지러운 시기,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 찍힌 주민에게 돌아온 것은 무참한 죽음과 이별이었습니다.
<오일남 / 4·3 희생자 유족(81)>
"(도피한) 형님 때문에 부모님도 다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서 형무소 수형했는데, 산에서 와서 잡아가니까 폭도라고 해서 다 죽여버린 거 아닙니까."
<강승중 / 안덕면 창천리(86)>
"산에 올라간 것이 도피자 가족이라고 해서 그 집 식구 12명을 전멸시켜버렸어. 산에 올라가서 죽고 여기서도. 내 누님과 매부 등이 비참한 꼴을…."
4.3 과제들이 해결되고 있다고 해도 마음 속 응어리를 풀고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강우일 /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
"몰살 당하고 하는 그런 과정에서 얼마나 아프게 지냈을까 하는 것을 더 이해하고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가질 때 우리가 아픔을 극복할 수 있지 않는가."
KCTV뉴스 조승원입니다.
조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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