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때 한라산은 중산간 주민들의 집단 피난처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생존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주민들의 산 속 집단 피난처를 비롯한 유적지 18곳이 확인됐습니다.
추가 조사가 절실하지만 예산과 인력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4.3 당시 계엄령과 중산간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마을은 한순간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 마지막 선택지인 산 속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오름과 바위 굴인 궤에서 생활했던 흔적이 일부 남아있지만 산속 피난처는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조사의 불모지였습니다.
지난해 애월읍 노로오름 일대 격전지와 집단 거주지를 확인한데 이어 한라산 국립공원 4.3 유적지 실태조사도 이뤄졌습니다.
생존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라산 서북부지역과 관음사, 어승생 일대가 조사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오라리와 이호리, 노형리 주민들의 피난지를 비롯해 4.3 유적지 18곳을 발굴했습니다.
주거지 터를 비롯해 당시 사용했던 숫가락이나 그릇 조각, 농기구 같은 생활 집기들이 발견됐습니다.
무장대 훈련장이나 토벌대 주둔지에서는 총알과 무기류 들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한라산 4.3 유적지는 관음사 군주둔지나 수악주둔소 등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된 한라산 일대에서 본격적인 유적지 조사가 착수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은희 / 4·3 추가진상조사단 조사 2팀장>
"지금 현재 금단의 땅처럼 돼 버린 국립공원 안에는 조사를 전혀 못했거든요. 생생한 현장들이죠. 4·3 무장대 활동지, 많은 사람들의 피난처를 확인하는 조사였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라산 유적지 조사는 산속에서 대립했던 토벌대와 무장대, 그리고 피난민들의 당시 역사를 규명하는 4.3 추가 진상조사의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지만 한라산 동북부와 서귀포시권 조사는 시작도 못했고 예산도 반영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증언해 줄 생존 주민들도 대부분 고령인만큼 한라산 4.3 유적지 실태 조사는 더 이상 미뤄져선 안될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영상취재 김승철 화면제공 제주4·3연구소 )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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