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당시 일가족이 희생되며 고아가 됐다가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은 산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장이 최근 4.3 유해 신원 확인으로 가족을 찾게 되면서 한을 풀게 됐습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며 행방불명 희생자 유족들이 하루 빨리 가족을 찾기를 기원했습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여든이 넘은 노부부와 자녀들이 4.3 평화공원을 찾았습니다.
4.3의 아픔이 서린 고향 제주를 떠나 미국에서 반평생을 보낸 이한진 재미제주도민회장의 일가족입니다.
4.3때 희생된 어머니와 누나, 형 두명을 모신 위패 앞에서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옵니다.
<이한진 / 재미제주도민회장(88세)>
"한진이가 왔습니다. 형님 동생. 어머니. 누님."
4.3 당시 이 회장의 가족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 형이 가담했다는 이유로 빨갱이 - 도피자 집안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토벌대에 의해 집은 불타 없어졌고 1948년 12월, 어머니와 누나가 학살됐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선무 공작에 속아 자수했던 작은 형은 불법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희생됐고 징역 15년형을 받은 큰 형은 대구형무소로 이송된 이후 행방불명됐습니다.
억울함과 원통함보다 고아가 된 자신도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던 그는 결국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반평생 건실하게 사업을 일구고 아들은 의사, 딸은 법조인으로 키워냈지만 연좌제 피해를 입지 않을까 고향 제주 그리고 4.3 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습니다.
<이한진 / 재미제주도민회장(88세)>
"제가 겪었던 일들을 아직까지도 자유롭게 얘기를 해야 하나 하는 그런 멈춤이 있고 제가 잊지를 못합니다. 우리 애들에게 자세하게 얘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뒤늦게 지난 2019년 미국 UN 4.3 인권 심포지엄에 참석해 4.3의 참상을 알렸고 지난 2021년과 지난해에는 재심 재판을 통해 두 형님의 억울함을 풀어드렸습니다.
지난해 제주에 왔다가 우연히 참여하게 된 채혈 검사로 기적적으로 작은형 유해 신원이 확인되면서 자신의 평생의 한도 풀게 됐습니다.
<이한진 / 재미제주도민회장(88세)>
"저희 형님은 가족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이제 남은 이 많은 4·3 희생자 여러분들이 가족과 함께 상봉해서 만나는 그날이 오기를..."
자녀들도 이제는 아버지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승원 / 이한성 회장 자녀>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풀렸어요. 오랫동안 혼자 슬픔 속에 짐을 지고 계셨는데 이제는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이 회장은 아직도 유해 조차 찾지 못한 큰 형님을 만나는게 마지막 소원이라면서 형님 처럼 행방불명된 43 희생자들이 하루 빨리 가족들을 되찾고 이를 통해 유족들도 치유받기를 기원했습니다.
KCTV 뉴스 김용원입니다.
(영상취재 김승철)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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