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려웠던 시기에
재일제주인들의 조건 없는 기부는 제주 발전의 초석이 됐습니다.
KCTV제주방송 취재팀이
추석 연휴기간에 다섯차례에 걸쳐
재일제주인의 업적과 과제를 기획뉴스로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조건없는 기부의 대표적인 인물, 고 안재호 선생입니다.
후손들은
기억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오히려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최형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본 최고의 불교성지인 와카야마 현 고야산.
'신령스러운 땅'으로 여겨지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죽은 뒤에 묻히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힙니다.
이 곳에 한국식 묘지가 눈에 단연 띱니다.
규모도 상당해 당시 위세를 가늠케 합니다.
바로 표선면 출신의 재일제주인 고 안재호 선생의 묘소입니다.
13살에 일본으로 건너와
한때 전 일본 재계 순위 24위까지 오른 그룹회사를 이끈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인터뷰 : 안융성 고 안재호 선생 장손>
"태어나서부터 계속 여기 할아버지와 설 때 추석 때 명절 때 맨날 같이 왔었습니다.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추억도 많이 있고 기억도 많고."
안재호 선생은 1950년대 후반 고향 가시리에
쌀과 옷감을 시작으로
전기 가설과 도로개설, 학교 부지 등
약 1억 6천만 원에 이르는 기부를 실천했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특히 제주 발전의 토대가 됐던 감귤 묘목 보내기 운동도
안재호 선생의 주도로 이뤄지는 등 제주에 기여한 바는 컸습니다.
<인터뷰: 김영애 고 안재호 선생 며느리>
"귤도 일본에서 와가지고 귤도 제주도 귤 가져간 것도 아마 그때일 거예요. 그래서 제주도에 해야 된다고 해서 와카야마까지 와서 귤도 다 한국으로 가져가게 해가지고..."
한국정부는 그에게 최고명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습니다.
표선면 가시리 주민들도
1976년 안재호 선생의 동상과 기념비를 세울 정도로 은인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1994년 74살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면서
그의 고향사랑도 멈췄습니다.
회사들은 후계구도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쟁에 휘말리며 쇠퇴했고
지금은 부동산 사업이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인터뷰: 안융성 고 안재호 선생 장손>
"눈에 안보이고 자랑하시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이 필요한다는 데 돕고 그래서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할 수 있는 해라 그걸 눈에 안보이게 저한테 가르치신 것 같아요."
조건 없는 기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안재호 선생,
화려했던 성공신화는 이제 과거가 됐지만
애틋한 고향사랑 정신은
지금도 제주 사회에 큰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KCTV뉴스 최형석입니다.
(영상취재 현광훈)
최형석 기자
hschoi@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