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1] 4.3과 제주 굿 "진상 규명과 재건 원동력"
김용원 기자  |  yy1014@kctvjeju.com
|  2026.04.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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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TV 제주방송은 4.3 78주년을 맞아
4.3과 제주 고유의 심방 문화,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마을 마다 새롭게 쓰여진
4.3 재건사를 다룬 기획 뉴스를 마련했습니다.

첫 순서로,
4.3 생존자들의 유일한 한풀이 공간이자
공동체 회복의 구심점을 했던
제주 굿과 심방 문화를 조명했습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4.3 감금시설이었던 옛 주정공장 터에 무악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억울한 넋을 달래고
저승길을 닦아주는 '질치기' 의식을 통해
4.3 행방불명 희생자 영령들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서순실 / 국가무형문화유산 제주큰굿보전회장>
"살암시민 살아진다. 78년 동안 울면서 다니고."

심방의 입을 빌려 전해지는 넋두리에 유족들은 수십 년 묵은 응어리를 쏟아내며 깊은 위안을 얻습니다.

<송승문 / 전 4·3 유족회장>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 돌아가신 희생자를, 유족을 위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가족도 아닌데. 피해자도 아닌데 그 말씀을 하는 과정에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마음속으로 항상 그분들한테 감사드리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매년 4월이면
제주 4.3 초토화 마을에선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굿이 열립니다.

돌아가신 마을 주민 130여 명의 이름 뿐 아니라
이름 없이 죽어간
영령들을 함께 위로하는 제례와 한풀이가 진행됩니다.

<한덕자 / 조천읍 대흘리 (70세)>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이렇게 굿을 해주면 어딘가 모르게 집안도 편안하고 동네마다 다니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렇게 와서 (굿을) 해주니까. 진짜 고마운 분들이에요.”

오늘 날 제주굿은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과 국가무형문화재 등으로 지정되며
가치를 인정받았고
추모굿과 해원상생굿,
위령굿 같은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면서
4.3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제주굿과 심방은
미신의 굴레 속에 가혹한 탄압의 대상이었습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함께 불어닥친 미신 타파 운동은
신당을 파괴하고
굿판을 강제로 중단시켰습니다.

당시 심방들은 경찰에 연행되거나 굿에서 쓰는 무구를 빼앗겼습니다.

<양승건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장>
"숨어서 했죠. 무속에 대한 억압을 했었죠. 직접 잡아가기도 하고 악기들을 무속 관련된 걸 태워버리기도 하고 빼앗아 버리기도 하고. 그래도 이게 모든 분들이 의지할 데가 마음을 풀 곳이 조상을 의지하고 신전을 의지하고 그렇게 해서 그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숨어서라도 (굿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역설적이게도 이런 억압은 4.3 한풀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시를 피해 산과 들,
동굴과 바다 불턱에서 은밀하게 치러진 굿
이른바 '4.3 내력굿' 은
4.3의 참상을 증언하는 '최초의 진상 규명' 현장이였습니다.

<한진오 / 민속학자>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실이 아주 구체적으로. (굿을 통해) 당시의 삶도 들어오고 4·3의 진상이 이런 것이구나. 4·3 해원 상생, 진상규명 이런 건 사실은 아주 당위성 있는 소재이긴 하지만 구체성을 갖고 있는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되게 개념적인 말이고. 그런데 굿판에서는 그런 게 절절하게 살아난다.”

4.3 굿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것도 바로 4.3 유족들이었습니다.

1948년 10월, 60여 명이 희생되며 초토화됐던
4.3 '잃어버린 마을' 애월읍 원동에서
42년 만인 1990년 9월,
사흘 동안 열린 원동 무혼굿이 대표적입니다.

숨죽여 지내던 생존 희생자들이 직접 굿판을 열어
공개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린 증언의 장이었습니다.

<한진오 / 민속학자>
"그렇게 원동마을 무혼 굿이 벌어지게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우리의 무속, 심방을 중심으로 하는 제주의 무속은 어떤 종교도. 4·3을 외면할 때 돌아서지 않고 끌어안았다는 게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죠.”

11명이 숨진 다랑쉬굴 학살터에서의 2002년 봉행된 현장 위령굿은
해원의 상징으로 남아있고
마을 공동체 전체의 공동 굿으로 확산된 전환점이었습니다.

<씽크: 다랑쉬굴 위령굿>
“그때 한 영혼이 손들고 나오더니, 독한 놈들 그대로 총 쏴서… .”

“아이고 이제라도 천국으로 가세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아이고, 죄 없는 우리 오빠.”

이를 계기로 제주 전역으로 유사한 형태의 4.3 굿 문화가 뿌리내렸고
이 과정에서 심방은
4.3의 진실을 깨우고 유족들을 치유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양승건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장>
"너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살았기 때문에 유족 분들도. 이게 굿을 하는 소리 자체만 들어도. 그리고 연유를, 4·3 때 어떻게 살아왔고 돌아가셨는지 연유를 듣잖아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감동을 얻고 풀리는 게 그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의지하고 믿었기 때문에 그 힘으로 살아갔던 것 같아요. 우리 도민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제주 굿은
치유와 4.3 진상 규명의 의지를 간직한 채
오늘도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맥을 잇고 있습니다.

KCTV 뉴스 김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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