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TV 4.3 기획뉴스 두번째입니다.
4.3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아픔 속에서도
마을 재건과 공동체 회복에 앞장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주 고유의 굿과 심방 문화가
한풀이 공간이자 해원의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4.3 학살터였던 제주 해안마을,
해녀 공동체 문화에서
치유와 회복의 가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바다와 맞닿은 해안가,
'머릿궤'라 불리는 바위 틈에 소박한 제사상이 차려졌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올리고 불을 피워 액운을 쫓습니다.
바다 신께 제물을 바치는 '지드림' 의식입니다.
<장광자 / 해녀>
"여든 넘은 할머니가 바다에 다닐 거니까, 오토바이 타고 다니니까 아무 사고 없이 다닐 수 있게 하시고. 소라도 잘 보이지 않아요. 소라도 좀 보이고. 용왕님이 좀 도와주세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있을 만큼
험난한 물질을 해온 제주 해녀.
해녀 마을에는 바다 신과 해녀 굿을 중심으로
한 신앙 문화가 뿌리내렸습니다.
무엇보다 해녀 굿은
4.3과도 깊이 이어져 있습니다.
4.3 당시 제주 해안가는
비극적인 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남편과 자식을 잃은 슬픔을
삼킨 채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날선 칼바람 속에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친 바다에서 해녀들이 춤사위를 펼칩니다.
춤을 추며 마음을 치유하는 치료 의례였던
'추는 굿'이
심방이 아닌 해녀들의 몸짓에서 재현됩니다.
4.3의 상흔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불턱과 해신당 그리고 해녀 굿판에서
비로소 금기시됐던 4.3을 꺼내 놓았습니다.
<장광자 / 해녀>
"4·3에 돌아가신 조상님도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빌어주시죠. 따로 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아도 심방이 굿할 때마다 빌어주죠. (그러면) 마음도 편안하고. 우리 후배들은 그런 데 무심하지만 나는 어머니도 했고, 나도 했고, 시집와서 한 40년 동안 열심히 영등굿도 하고 본향도 찾아다니고.”
<김순화 / 해녀>
"용왕제, 몸제 드려가지고 자기를 보호해 달라는 뜻으로 굿을 많이 했어요. 그 믿음으로 살았으니까. 바다에 다니는 사람들 특히 더. 요왕제라고 해서 용왕님께 기도를 드리는 형식으로 많이 했죠.”
지금도 봄이 시작될 무렵,
제주 마을 어촌계 30여 곳에서는
영등굿이나 잠수굿 처럼
다양한 형태의 해녀 굿이 매년 봉행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무속이나 종교 의식을 넘어
4.3에 무너졌던 해녀 공동체와
마을을 일으켜 세우는
치유의 장으로 원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진오 / 민속학자>
“미신타파 운동이 벌어졌던 20세기 후반, 그 이후에 새삼스럽게 우리 문화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는 2000년대 초반. 이런 어떤 사회 변동 과정에서도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을 쭉 끌고 오는 집단들은 사실상 해녀가 가장 유일하고. 어쩌면 제주의 정체성을 가장 오롯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해녀라고 봐야 하고. 그와 더불어 해녀들이 왼손이라면 오른손은 심방인 거죠.”
풍요와 안전을 기원했던 해녀 문화와 해녀 신앙은
4.3을 기점으로
치유와 회복의 원동력으로서
제주 해녀 삶 속에 깊이 자리잡았고
세계가 인정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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