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별법을 통해 배보상 조항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서류상 가족관계가 제대로 올라가 있지 않아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 KCTV에서도 여러차례 전해드린 바 있는데요.
오늘 이들의 아픈 사연을 직접 털어놓는 증언본풀이가 열렸습니다.
김경임 기자의 보도입니다.
올해로 77살을 맞은 강순자 할머니는 아버지만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이제는 얼굴도 거의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1948년, 6살 소녀이던 때입니다.
4·3 당시 동사무소에 모이라는 말을 듣고 저녁 밥도 먹지 않은 채 따라나간 아버지.
그렇게 집을 떠난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외삼촌의 조카로 출생 신고가 돼 서류상 아버지가 없는 강 할머니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사망신고도 아직까지 하지 못했습니다.
살아생전 아버지 강상룡의 딸로 불리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강순자(77) / 당시 제주시 애월읍 거주>
"지금 우리 아버지가 사망(신고)가 안 됐을 거예요. (제가 서류상) 딸이 될 수가 없지 않나요? 어떻게 해야 딸이 될 수 있나요? 나는 죽기 전에 누구 딸이라도 돼 봤으면 좋겠어요."
김정희 할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가 없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에게 4·3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당시 뱃 속에 김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면서 출생신고를 위해 '가짜 아버지, 가짜 남편'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엉망이 된 호적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한 소송에서 어머니와 '가짜 남편'과의 결혼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사실혼 관계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았고,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진짜 남편과 아빠를 되찾기 위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정희(72) / 당시 제주시 애월읍 거주>
"4·3 특별법이 개정되면 모든 게 다 완성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특별법이 나오고 보니까 저 같은 사람뿐 아니라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돌아가신 (분) 호적 때문이라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앞으로도 더 (갈 길이) 멀구나."
4·3의 비극이 발생한 지 70여 년.
4·3특별법이 개정되며 배보상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서류상 가족을 잃어버린 이들은 뿌리를 되찾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KCTV 뉴스 김경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