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가족관계 연속기획 두번째 뉴스입니다.
4.3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유전자 검사가 가장 정확하지만
시간과 비용,
그리고 유해가 없다는 이유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4.3 희생자와 유족 신고 사례 처럼
주변의 친족이나 이웃의 증언을
가족관계 입증 증거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 되고 있습니다.
특히 족보와 비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여성 유족들에게는
이 같은 증언이 유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여든을 앞둔 윤순자 유족은 지난해,
중문 4.3 희생자 위령비에서
친아버지의 이름 석자를 처음 찾았습니다.
<씽크:윤순자 4·3 유족 (77세)>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다 찾아오는데 아버지만 아무도 안 찾아와서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이제라도 찾와왔으니까 한 푸세요."
100세가 넘은,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생전 아버지의 사진도 봤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4.3 희생자였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게 됐습니다.
<윤경로 아버지 지인 (102세)>
"지금 현재 제주시에 4·3 평화공원 가면 묘가 있으니
한번 가서 사위랑 다 가서 찾아보라."
태어나 처음으로 4.3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아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기쁜 날이면서도 지금까지 왜 아버지를 몰랐을까 하는 자책도 듭니다.
평화공원이 처음 만들어진 2008년에
가장 먼저 행방불명인 표석에 안장됐지만
평생을 아버지의 조카로 살아온 유족은
이 같은 사실을
지금까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씽크:윤순자 4.3 유족(77세)>
"우연히 그 어르신 만나 알게돼서 거기 가 보니 아버지 사진도 있고 어르신 오래 사셔서 우리 아버지 찾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랬죠."
아버지의 표석에는 유족 이름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딸로 인정받아
유족 대표에 이름을 새기는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씽크:윤순자 4.3 유족(77세)>
"옆에 보면 유족대표 이름이 적혀 있는데 여기에는 안 적혀있죠. (그랬구나) 이제 어머니 이름만 올리면 돼요."
양옥자 유족도
1948년 12월, 중문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조카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바로잡기 위해 땅 속에 묻힌 아버지 유해를 꺼내
유전자 검사까지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세 차례 유족 신청에도
가족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됐습니다.
<씽크:양옥자/4.3 유족(73세)>
"도청에서 7번이나 전화가 왔어요. 더 확실한 증거를 내라. 2순위로 밀린다."
이제 유일하게 기댈 곳은
뿌리를 확인시켜 줄
주변의 증언 뿐입니다.
호적과는 다른 실제 친자 관계라는 사실을
더불어산 친족과 이웃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종호 양옥자 유족 친족>
"자식이면서도 자식 도리를 정부에서 안 해주니까. 호적을 정리 못해서 억울함을 잊지 못하는 거야. 정부에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으면 하는게 우리 친족들도 바라는 거니까.
"
실제로 보증인들의 증언은
주요 과거사건에서 유력한 증거로 활용됐습니다.
20여년 전, 4.3 희생자와 유족 신고 당시에도
친족이나 4.3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보증인 3명의 증언이 중요한 소명 자료였습니다.
4.3 시행령 개정으로
가족관계 심의 의결 권한을 쥔
4.3 위원회에서도
보증인을 중요한 판단근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씽크:박창욱/ 4.3 중앙위원회 유족대표 위원>
"종친회나 아니면 주위에서 얘기해줄 수 있는 근거를 아는 사람의 증언은
그것도 하나로 인정해줘야 된다.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어요.
내가 유족으로 겪어보니까 동네에선 우리 집안을 다 안다. 그런데 법적으로만 하면 모르지 않나.
정부 실태조사에서도
친자관계 불일치 사례 208건 가운데
보증이 가능한 138건이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보증인 수는 2명 이내, 보증인 범위도 친족이 아닌
마을 주민이나
지인까지 폭넓게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정부 역시 사실상 어려워진 과학적 입증 방법의 대안으로
증언과 기록을 통한
보증 방법을 유력한 증거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씽크:김민재/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
"우리가 흔히 인우보증이라고 하는 주변 분들의 증언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는 본인의 일관된 주장이나 신뢰성, 이런 부분을 검토해서 어떤 객관적인 자료가 없더라도 4·3 위원회에서 위원들이 토론이나 논의를 통해서 융통성있게 심사할 수 있는 장을 열어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
4.3 친생자 불일치 유족 가운데 80%는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여성은 족보나 비석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여성 유족들에겐 어쩌면 보증인의 증언이
친자 관계를 확인해 줄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증인 대부분이 고령인만큼
진실을 밝혀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김용원 기자
yy1014@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