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재일제주인 항일 역사…'발굴·재조명' 과제
김용원 기자  |  yy1014@kctvjeju.com
|  2025.08.1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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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보훈부에 서훈 신청된
제주 인사 일부가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저항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노동, 정치, 자주 운항 운동을 하며
일제에 맞섰고
광복 이후 제주 재건에도 기여했지만
재일제주인들의 항일 역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일제 강점기 1923년 12월 15일,
제주와 일본 오사카 직항로가 개설됐습니다.

당시 제주와 일본을 오가는 제주인은 해마다 4만 명을 넘었습니다.

부산 등 다른 지역 항구를 왕래하는 이용객보다
약 10배 많은
황금 노선이었습니다.

자연히 일본 자본이
노선 운영을 독점했고
비싼 운임에 제주인들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주 출신 고순흠, 김문준 선생 등이 주축이 돼
조합이 만들어지고
일제에 운임 인하 등을 요구하면서
직접 항로를 운영하는 자주운항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 오사카 일대에는
재일제주인들의
대규모 노동 사상 운동이 일어나면서
일제의 부당한 탄압과 차별에 맞섰습니다.

일본내 민족운동의 중심에는 재일 제주인들이 있었습니다.

<박찬식/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
"오사카에서 노동 운동이 많이 전개됐습니다. 일부 지식인들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상운동, 노동운동, 자주운항운동이 재일제주인 항일 운동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저항 운동이 확산하자 일제의 감시망은 더 촘촘해졌습니다.


1932년 8월
일본 고등법원 검사국이 작성한 사상월보에는
오사카 일대에서
사상운동을 펼친 제주인은
3백명이 넘는다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일제주인들의 항일 역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록에서만 보더라도
일본에서 활동한 항일 인사는 수백명이지만
현재 보훈부에 추서된
일본 활동 이력의 제주출신 독립유공자는 25명 내외에 불과합니다.

유족이나 일본내 활동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
특히 4.3, 조작간첩 같은
이후 사건과 연관된 사상 검증에 휘말리며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씽크:권시용 /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이분들이 다들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활동하셨던 분들이다 보니까 해방 이후에 현재 대한민국 체제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적을 가지신 분들이 있죠. 그런 점 때문에 서훈 신청을 포기해야 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무엇보다 제주지역 내에서도
발굴 노력이나 조사 연구가
다른 과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한 것도 현실입니다.

<씽크:손영석 / 제주대 재일제주인센터장>
"특히 재일제주인들이 민족 교육이나 항일 운동에 있어서 큰 역할들을 해오셨는데 그동안 조명을 정말 못 받아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자료를 수집하고 후세에 잘 안 알려진 분들을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했던 재일제주인들은
해방 이후 고향 기부를 통해
교육과 경제 등 전 분야에서
제주 재건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의 연대를 제대로 기록하고
국가가 예우하는 일은 더이상 늦어서는 안될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영상취재 현광훈 / 그래픽 유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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