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4.3 군경 초토화작전에 의해 당시 주민 3만 명이 희생됐고 중산간 마을 3백여 곳이 하루 아침에 불타 없어지면서 마을 고유의 공동체도 무너졌습니다.
KCTV 제주방송은 4.3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즈음해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4.3 잃어버린 마을의 재산 피해 실태와 소유권 회복 운동 노력을 재조명합니다.
4.3 희생자들이 남긴 토지가 유족들에게 제대로 전해졌는지, 군사정권 시대 시행된 부동산 특별조치법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이로 인한 토지 분쟁과 마을 갈등 사례까지 네 편의 기획뉴스에 담았습니다.
그럼 이 같은 논란의 발단이 된 4.3 초토화작전과 잃어버린 마을 실태 등을 김용원 기자가 전합니다.
제주시 애월읍 중산간 마을, 봉성리.
사람이 앉은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자리왓은 이 지역 대표 부락이었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팽나무에서 대소사를 나누고 척박했지만 수눌음이 넘쳤던 곳이었습니다.
<강규방 / 4.3 유족>
"그 때 공동체 아주 협력하며 살았지.."
하지만 1948년. 4.3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1948년 4월 3일 오름마다 무장 봉기가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기 위한 제주 계엄령 선포, 그리고 제주지역 계엄사령관 송요찬 제9연대장에 의한 군경 중산간 초토화작전이 실시됐습니다.
마을을 떠나라는 소개령이 내려졌고 1948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중산간 마을 90%가 전소됐습니다.
자리왓도 1948년 11월 23일부터 사흘 동안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주택 30여 채가 전소됐고 잿더미가 된 집터는 붉은 땅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250년 유서깊은 마을 공동체는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해안가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인 제주시 곤을동.
1949년 1월, 무장대가 숨어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별도봉 자락 작은 마을은 제거와 해체의 대상으로 변했습니다.
산사람으로 내몰린 주민 29명이 집단 학살됐고 이틀 동안 계속된 화마는 700년을 이어온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정겹던 멜 후리던 소리도 사라졌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당시 마을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쌀 몇 줌에 생명줄 같은 땅을 넘겨야 했습니다.
중산간 웃뜨르 마을을 비롯해 해안지역에서 유일하게 전소된 곤을동까지 3백여 마을이 하루 아침에 소멸됐습니다.
6년 뒤인 1954년 가을, 한라산 입산을 전면 금지한 금족령이 풀리면서 마을 복귀 사업이 추진됐지만 허울에 불과했습니다.
<강덕환 / 4.3 실무위원회 위원>
"당시 국가 재건사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죠."
1955년 제주도가 작성한 중산간 난민 정착보고서.
제주 4.3 피해 상황과 복구 계획이 담겼습니다.
5만 분의 1로 축소한 마을 지도에는 복구 대상인 중산간 마을들이 표시돼 있습니다.
피해 마을 지명과 이곳에 이주를 완료했거나 이주가 예정된 세대수가 색과 기호로 구분돼 있습니다.
제주도는 당시 조사에서 중산간 마을 2천 70 여 세대를 이주대상으로 파악했습니다.
당시 피해가 컸던 북부지역 상황.
북제주군 해안리에 20세대가 정착했고 도평리 28세대, 노형리 50세대 등이 이주했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주 인구수와 경작 면적 같은 중요한 기록은 없습니다.
소개령으로 마을 전체가 불 타버린 애월 자이동과 원동.
각각 137세대, 59세대를 이주시킬 계획이었지만, 실제 마을로 돌아간 주민은 없었습니다.
4.3 피해 현황과 정착 계획을 담은 최초 보고서였지만, 마을 주민들이 실제 복귀했는지, 정착 사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있었는지 이 보고서 만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1960년대 정부 주도의 재건사업이 시작되면서 이 무렵 피해 마을에도 복구주택들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4.3 초토화 이후 14년이 지난 1962년까지 전체 피해 가구의 40%인 7천 세대.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였던 4만 명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강규방 / 4.3 유족>
"전기도 끊기고 , 하수도도 안되는데 거기를 어떻게 살아..."
결국 4.3 초토화작전으로 인한 피해 마을 3백 곳 가운데 122곳은 잃어버린 마을이 됐습니다.
부모 조상을 잃은 어린 유족들은 고향을 떠나 생계에 내몰렸고 수십년 동안 고향 땅의 기억을 지워버렸습니다.
이렇게 잊혀진 터전은 군사정권이 들어선 1960년대 특별조치법에 의해 또다시 혼란을 겪습니다.
수천년을 이어왔던 마을 공동체와 땅의 기억도 4.3이 휩쓸고간 70여년 전 그날 이후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김용원 기자
yy1014@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