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획] 땅의 기억② - 빼앗긴 땅, 끝나지 않은 아픔
문수희 기자 | suheemun43@kctvjeju.com
| 2021.03.15 09:29
KCTV 4·3 기획 땅의 기억, 두번째 순서입니다.
4.3 당시 중산간 마을이 불 타 사라지면서 피해자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마저 잃게 됐습니다.
군사정권 당시 간편한 토지 등기를 위해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도입됐지만 살아남은 4.3 유족 대부분은 어리거나 미망인이어서 재산 존재 자체를 몰랐고, 또 이렇다할 대처를 하지 못해 오늘날에 이르는 사례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는 부동산 특별조치법을 악용해 이들의 재산을 착취하는 사례까지 발생했습니다.
뒤늦게 소송이 진행되곤 있지만 세월이 워낙 지난 탓에 입증에 한계를 보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문수희 기자입니다.
<문수희 기자>
"4.3의 광풍으로 마을은 불 타 없어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파괴된 공동체를 다시 일궈가고 땅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을 짚어 봤습니다."
1948년 11월, 4.3 광풍 속에 행방불명된 강창국 할아버지.
아버지를 떠나보낸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들인 강수면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말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응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어느날 영문도 모른 채 사라져 버린 아버지의 땅 문제입니다.
<강수면 / 4.3 토지 소송 유족>
"억울한 일이다. 아버지가 4.3사건 때 행방불명 되고 누가 나한테 얘기해 주는 사람도 없고 어머니가 마침 얘기해주니까 이 땅이 아, 할아버지 땅이었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땅을 도둑 맞았다 싱크 추가 더욱이 이해할 수 없는 건 뒤늦게 확인한 소유권 등기서류상에는 1983년 당시 4.3 전에 이미 돌아간 할아버지에 의해 매매가 이뤄졌다는 기록입니다."
4.3 당시 열 살이던 강 할아버지는 여든이 다 되도록 소유권이 이전됐다는 사실 조차 몰랐습니다.
<강수면 / 4.3 토지 소송 유족>
"우리 할아버지 땅하고 같은 날 조치법으로 (다른 사람이) 해 먹었습니다. 아직 그 범인을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모든 것이 끝나면 되돌려 놔라... 못 돌려 놓는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건 간편하게 토지를 등기할 수 있는 특별조치법을 악용했기 때문입니다.
특별조치법은 일제시대 토지대장에는 이름이 올랐지만 4.3과 한국전 등 근대현대사의 비극으로 등기를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1960년부터 시행됐습니다.
보증인 3명만 있으면 지자체로부터 확인서를 발급받아 간편하게 등기든, 매매를 인정한 결과입니다.
<박운용/ 행정사>
"그 당시 특별조치법이 3명이서 보증을 서면 조치법상 필요한 인원이 채워지거든요. 내용을 들여다 봤더니 (토지) 대장상의 소유자 강제옥 할아버지로부터 83년 5월 10일에 1인이 매매했다. 이를 보증한다... 그런데 83년 5월 10일날 이미 이분 세상에 안 계셨거든요."
취재진이 당시 보증인에게 직접 연락을 해봤습니다.
<당시 보증인>
"우리 마을에서는 (보증서) 작성을 안해줘요. 오직 확인만 하고 도장만 찍었어요. 조치법으로 공문을 내서 2주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고 이의 신청도 안하고 공고 기간이 지나니까 도장 찍어준거죠. (도장 몇장 찍었어요?) 아 뭘 그런걸 물어봐요. 필요없어요."
유족들이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방법은 소송 뿐 이었습니다.
<강지윤 / 4.3 토지 소송 유족>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땅을 샀다고 하는데 시점이 안 맞아요.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산 것 처럼 둔갑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1년 가량 이어진 소송.
당시 매매 사실을 모르고 보증을 섰다는 보증인의 양심선언도 확보했지만 법정에선 증언을 번복했고 민법상 상속권을 갖는 장남의 후손이 아니라는 법의 논리에 끝내 좌절했습니다.
<강문원 / 변호사>
"일반등기하고 특별조치법에 의한 등기를 비교하면 특별조치법에 의한 등기는 일반등기보다 추정력을 더 강하게 인정해줘요. 어지간하면 특별조치법에 의한 등기를 무너뜨려서 내가 승소할 확률이 적은 거죠."
물론 당시의 부동산 조치법을 악용한 사례를 뒤집은 과거 판결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마을인 애월읍 원동에서 살아남은 4.3 유족들이 지난 1989년 특별조치법에 의해 부당한 토지 등기의 사례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5년 간의 기다림 끝에 승소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허위 내용의 보증서를 근거로 한 부동산 거래가 무효라는 유족 주장을 받아들여 1971년 조치법에 의해 이전된 토지를 4.3 유족들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선고했습니다.
<이진화 / 4.3유족>
"다만 자기 것을 억울하게 뺏기는 것 보다 낫죠. 5년 동안 말이 5년이지 굉장히 길었어요."
하지만, 30년 전과 달리 지금은 관련 사실을 물을 이도, 듣고 밝혀줄 이를 찾기도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진실은 오직 땅 만이 알고 있습니다.
<강수면 / 4.3 토지 소송 유족>
"재판 받으면서 스트레스 쌓이고 머리가 아주 복잡해진 것 같아요. 저 자신이... 법도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4.3의 또 다른 아픔.
<문수희 기자>
"땅의 기억, 그리고 진실은 감당하기 버거운 소송 과정과 까다로운 입증 책임으로 또 다시 세월 속에 잊혀지고 있습니다. KCTV 뉴스 문수희 입니다."
문수희 기자
suheemun43@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