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조치법으로 인해 일부 마을에서는 4.3 유족과 마을간 법적 다툼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가족 공동체마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보도에 김용원 기자입니다.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20만 제곱미터 규모의 폴로 경기장은 마을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일군 텃밭이었습니다.
하지만 4.3은 모든 것을 바꿔놨습니다.
4.3때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땅은 후손들도 모른 채 수십년 동안 미등기 토지로 남겨졌고, 1970, 80년대 특별조치법에 의해 마을 유지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습니다.
<안성진 / 4.3 유족>
"조부님은 4.3 사건때 저희 할아버지, 큰 아버님, 고모님 세분이 1948년 10월에 돌아가셨는데 매매계약서에는 1965년 3월 돼 있어요. 근데 그것을 원인으로 해서 1981년 조치법으로 다 넘어간거죠.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되잖아요."
4.3때 영문도 모른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무덤 속에서 살아나왔냐며 따지기도 했고, 허위 보증과 조치법 위반을 주장하며 법원에 호소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20년 가까이 이어진 싸움에서 돌아온 건 나약해진 심신과 주변의 철저한 외면이었습니다.
<안성진 / 4.3 유족>
"심지어 직장까지 찾아와가지고 마을 사람들이 몇 십명 와서 사직시키라고 시위까지 하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탄원서 받아가지고 제출하고.."
4.3 유족으로 시작된 토지 분쟁은 점차 마을 전체로 확대 됐습니다.
조상 땅 수십만 제곱미터가 한 순간 조치법에 의해 마을 목장회로 넘어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4.3 이전부터 목장지로 쓰이던 사유지 51만여 제곱미터의 소유권이 1981년 8월 31일 조치법에 의해 한 날 한시에 행원리 목장회라는 조직으로 이전된 것입니다.
4.3 유족과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등 후손 30여 명은 지난 2006년 위원회를 꾸려 이전조치법으로 수혜를 본 마을회와 마을 유지를 상대로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일제 시대인 1930년대 작성된 마을공동목장조합 규약에서는 조합원은 사유지를 목장에 무상 제공하고 조합이 해산하면 땅을 돌려받도록 돼 있습니다.
후손들은 해방 이후 목장조합이 사라졌기 때문에 규약에 따라 땅을 돌려받아야 하며 행원리 목장회는 조치법 당시 토지 이전을 위해 급조한 조직일 뿐 일제 시대 목장 조합과는 동일성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승철 / 부동산특별조치법 피해자모임 대표>
"아무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 행원 목장회하고 땅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아무 권리가 없는데 사기친 거예요. 사기. 어떻게 주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쳐서 저렇게 소유하고 있느냐 이거예요."
특히 조치법 시행 과정에서 토지 공고 같은 필수 절차도 무시됐다고 말합니다.
<한규북 / 조치법 시행 당시 행원리 서기>
"제가 리 서기니까 공고문을 붙이게 돼 있는데 새마을 운동하면서 1등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나도 몰랐어요. (왜 몰랐던 겁니까?) 공문은 보냈다고 하는데 게시판에 붙여야 하는데 안 왔어요. 제가 리 서기였는데."
하지만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법원은 마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마을과 싸운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마을은 소를 제기했던 주민들과 담을 쌓았습니다.
<마을회>
"억울하긴 마을회가 억울한거지... 마을이 그 사람들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갔어요."
<행원리 주민>
"갈등은 있죠. 좋게 바라보지 않아요."
부락은 풍족해졌지만 마을과 대립했던 주민들은 갈수록 피폐해졌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이어온 재판 10여건은 모두 패소했고, 함께 뜻을 이뤘던 이들도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강공욱 / 행원리 주민>
"결과가 어떻든 간에 빨리 밝혀져야지..."
정 넘치던 이웃과 친척도 하루 아침에 남으로 돌아섰습니다.
소외된 이들은 고향 땅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지만, 언제쯤 그 날이 올지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
<강승철 / 부동산특별조치법 피해자모임 대표>
"아름다운 집으로 만들고 싶어요 제가. 꿈이 그건데 할 수가 없잖아요. 누가 좀 반갑게 해준다든지 소통이 돼야 하는데 마을하고 소통이 안되니까.."
행원리 마을 어귀에 있는 4.3 위령비는 4.3때 희생된 90여 명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토지 분쟁으로 마을과 멀어진 4.3 유족은 할아버지 이름을 새기지 않았습니다.
화해와 상생이 아닌 마을 갈등의 상징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치법 분쟁은 제주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끈끈했던 가족 공동체마저 허물고 있습니다.
<강수면 / 4.3유족>
"이렇게 조그만 부락에서 남의 것을 자기것 아니면 손대지 말아야 하는데 조치법이라고 해서 남의 것을 훔쳐서야 되겠습니까?"
<송수명 / 조치법 피해주장 주민>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일 원통한 게 뭐냐면 땅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지만 같은 핏줄로 이어진 다 우리 제사 명절 모두 함께 지내고 있다가 딱 끊어지니까 이게 너무나 원통합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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