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부터 1954년까지 6년 동안 제주섬에 몰아친 4.3 의 광풍은 중산간 마을 3백 곳을 한 순간에 소멸시켰습니다.
수백, 수천년 이어온 마을 공동체도 무너졌습니다.
부모와 조상을 잃은 어린 가족들은 소개령에 의해 고향 땅을 떠나야 했고 생계에 내몰렸습니다.
<김차순 / 4.3유족>
"불 붙여진 땅 생각... 내려가서 남의 집에서 객지살이... 이집 저집 돌아다녔던 생각... 잊어버릴 수가 없어..."
정부의 재건 사업도 허울에 불과했고 당시 도민 인구의 13%인 4만 명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국가 공권력에 빼앗긴 터전을 되찾는 일도 오로지 땅을 뺏긴 주민들의 몫이었지만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렇게 수십년 동안 땅의 기억은 묻혔습니다.
제주시청 지하 문서고에는 이처럼 땅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토지 대장들이 보관돼 있습니다.
4.3과 한국전 같은 근현대사 비극으로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미등기 토지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시행됐지만, 아직도 제주에는 전체 토지 면적의 10% 가량인
7만여 필지의 미등기 토지가 남아있습니다.
<문용철/ 제주시 종합민원실 부동산관리팀장>
"이거죠. 분할되지도 않았고 소유자 주소가 없는 토지요. 미등기라고 보셔야 할거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4.3 사건과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등기 토지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시행된게 특별조치법이지만 허술한 법망을 악용한 피례 사례도 적지 않았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4.3으로 생사로 모르는 이들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부동산을 착취하는 사례입니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안 4.3 유족들은 조치법 피해를 규명하기 위한 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유로 돼 있는 등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증거나 증언이 있어야 하지만 세월이 워낙 지난 탓에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강수면 / 4.3유족>
"조치법 때 (보증서에) 도장 찍은거 때문에 알아보려고 왔습니다."
<당시 보증인>
"아 그거 뭐 물어볼게 뭐 있냐 또 그거 왜 법원에서 다 판결 난건데"
어느새 당시의 상황을 증언할 이도 점점 사라지고 있고 기억도 점점 사라져 개인 스스로 감당하기엔 벅찰 수 밖에 없습니다.
<박용운/ 행정사>
"사실대로 말씀해주는 일종의 양심선언이 필요하겠죠. 결자해지입니다. 그분들에 의해서 잘못됐다면 그분들이 바로 잡아주는게 옳다고 봅니다."
이런 가운데 한편에서는 새로운 법적 대응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습니다.
4.3 당시 군사 재판의 불법성을 70년이 지나 재심을 통해 밝혀낸 것처럼 토지 조치법 문제와 관련한 특별 재심도 4.3 유족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진녕 / 변호사>
"4.3 유족 중에 땅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경우에도 사실상 기존의 특조법으로 등기할 때 보증서에 서명했던 분들을 형사고소하는 방법으로..."
무엇보다 조치법에 의한 등기 추정력에 대해 과거 엄격했던 법원의 판단 기준과 잣대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명웅 / 변호사>
"그렇죠. 법원이 이런 사건에서는 용기가 필요해요 용기가. 그래서 정의와 형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용기가 필요한데 이 사안들은 다른 형태로 제기가 돼서 문제가 삼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4.3 특별법 개정으로 진상조사도 탄력을 받은 만큼 4.3 진상조사보고서에 한페이지조차 담지 못한 4.3 희생자들의 땅의 기억을 쫓아가는 실태조사도 이제라도 늦었지만 수면 위로 꺼내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오승국 / 4.3 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
"4.3당시 잃어버린 땅들이 있었지만 후손들이 땅들의 기록을 찾아나가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물론 제도적인 뒷받침과 함께 더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기 위해 사회적 공감대라는 울타리도 세워져야 합니다.
<강지윤 / 4.3유족>
"20명, 30명, 100명 이렇게 (토지 소유권을 찾는 유족이) 많이 되다보면 여론이 형성돼서 특별조치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고 바로 잡아서 저희 조상 땅은 본인들이 찾아가는 상황이 됐으면 바랍니다."
수천년 동안 일궈온 마을은 공동체라는 그릇을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4.3의 광풍은 한순간에 마을을 허물고 공동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잊혀져 가는 땅의 기억 속에서 후손들은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갈등과 법의 장벽에 부딪혀 고통 받고 있습니다.
<안성진 / 4.3유족>
"거짓으로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거든요."
<정근식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1948년 당시에 제주도의 토지 소유 관계라든지 제주도에서 공동체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공동체 연구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당시의 주민들의 삶과 제주도 4.3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됐고 어떤 식으로 파괴되었는가 이런것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수희 기자>
"사람들이 살고 공동체가 살아 숨쉬었던 땅, 제주의 비극 4.3으로 단절된 땅의 기억을 되찾고 규명하는 노력이 공동체 회복의 첫걸음 입니다. KCTV 뉴스 문수희 입니다."
문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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