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명예회복 작업도 탄력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4.3 발발 당시 제주 통치를 맡은 미군정의 책임 문제인데요,
해방 직후 갖가지 실책부터 3.1 발포사건까지 미군정은 어느 것 하나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으면서 70년 넘은 지금까지도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도에 조승원 기자입니다.
일제 패망과 함께 시작된 이남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정 통치.
우리 정부가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민들은 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김은희 /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가장 문제가 해방됐는데 해방되지 않는, 또 다른 외세가 등장하는 거고. 또 친일파가 재등용되는 부분이죠."
그게 아마 가장 큰 분노를 일으켰던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군정의 미곡 수집 정책은 기아에 허덕이던 도민들을 더 깊은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미군정은 제주와 일본을 오가던 화물선인 '복시환'과 관련한 비리에도 연루되며 도민 불만을 점점 키웠습니다.
<존 메릴 / 전 미국 국무부 동북아실장>
"점령군 하지 장군은 능숙하지 못했죠. 정치적 문제를 다루지 못했고 일본과 맥아더 장군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려해 정책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미군정의 정책은 훌륭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불만이 고조되던 시점에 터진 3.1발포사건과 무고한 죽음.
미군정이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행사하던 시기였던 만큼 도민들은 책임있는 대처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탄압이었습니다.
<양정심 /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합리적인 정부라면 발포 원인, 왜 이게 일어났는지를 찾는 거죠. 그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되는 거고. 하지만 3·1사건 발포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50m마다 경찰들 세우고 통행금지령 내리고 사람들을 체포하고 원인은 무시한 채 검거 선풍만 한다라는 거죠."
탄압에 저항하는 남로당을 중심으로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그렇게 제주4.3은 시작됐습니다.
미군정이 실책을 바로잡고 3.1발포사건을 제대로 수습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비극.
70년 넘은 지금이라도 미군정의 책임을 계속 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춘선 / 대한국제법학회 ('미군정 국제법적 검토' 논문 저자)>
"당시 군정을 담당했던 미국과 해방 이후 미군이 입법·사법·행정 3권을 가지고 다 행사했기 때문에 (4·3부터 정부 수립까지) 몇 달 되진 않지만,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양동윤 / 제주4·3도민연대 대표>
"적어도 4·3 역사는 정리, 기록이 돼야 하는데 적어도 누구에 의해 저질러진 것인지. 사건도 다 그런 거 아니에요. 누구에 의해서 가해한 사실이 드러나잖아요. 수사라는 것은. 그게 아니면 미궁, 미제사건으로 남아요."
제주4.3 발발 과정 속에서 당시 제주 시대상과 미군정의 역할을 재조명한 특집 다큐멘터리 '섬의 기억'은 내일(29) 오전 9시 30분 첫 방송됩니다.
KCTV뉴스 조승원입니다.
조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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