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삼) 77주년을 앞둔 가운디 여전히 4.3(삼)의 아픔광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는 유족이 하우다.
4.3(삼)으로 아버지광 어머니를 잃고 펭생을 연좌제에 시달리단 임충구 어르신은
아버지의 무죄 선고를 이끌어내기장 그야말로 통탄의 세월이라수다.
이정훈 기자가 보도쿠다.
[리포트]
{ 제주4·3(ᄉᆞ삼) 제77주년 증언본풀이마당 }
{ 제주4·3펭화기념관 }
ᄋᆢ든을 앞둔 임충구 씨는 4.3(삼) 당시 행방불맹된 아버지 얼굴은 희미주만 아버지광 디 마지막 밤 기억은 생생덴 염수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제주농업교를 졸업 수재로
{ 4·3(삼) 당시 아버지 행방불멩 }
을 주민덜로부떠 신망을 받아나신디 자신광 누이동생신디 어머니 말 잘 듣곡 지내렌 는 당부를 넹겨둰 홀연히 사라져수다.
[녹취 임충구 / 4.3(ᄉᆞ삼)희생자 유족 ]
"아버님이 뭐렌 앗냐민 야, 충구야, 누이광 싸우지 말곡 엄마 말 잘 들으멍 살암시라."
그치룩 아내광 식 끗디를 떠난 행방불멩된 아버지의 행방을 알게 된 건 반세기가 훌쩍 넹긴 지난 2000년이우다.
{ 행방불멩 아버지 학살 암매장 실 알게돼 }
4.3(삼)특벨법 제정에 맞촹 수형인 멩부가 공개되멍 행방불멩이 뒈난 아버지가 정드르, 지금의 제주공항에 학살 암매장뒈엇젠 는 사실을 안 거우다.
아버지가 행방불멩되곡 서북청년단으로부떠 협박이 이어젼 남제기 가족덜의 고통은 이루 말수가 엇엇수다.
{ 어머니 예비검속에 희생 }
눈을 피영 이 집더레 식덜을 메껴둰 치열 사투를 벌여난 어머니아울라 6.25 발발 직후 예비 검속으로 경찰에 끌려간 희생뒈어수다.
졸지에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떠돌멍 고생 끗디 중교를 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왕 건설업체를 운영멍 성공 사업가로 인정받아수다.
{ 4·3(삼) 연좌제 펭생 라 뎅겨 }
경ᄒᆞᆫ디 연좌제는 그의 펭생을 라 뎅겨수다.
공무원 임용고시에 합격엿주만 발령은 기약이 읏엇고 사업차 해외 출장을 가도 국가 정보기관의 감시가 느량 라 뎅긴 거우다.
[녹취 임충구 / 4.3(삼) 희생자 유족 ]
"홍콩에서 1박을 는디, 아칙이 일어난 보난 호텔 문 밋디 메모지가 이십디다. 페완 보난 이디선 만나는 사름 일름을 세히 다 족앙 귀국민 제출라. "
{ 극우 역사 왜곡 시도…4·3(삼) 진실 알리기 적극 나사 }
끗나지 아년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단 임충구 씨를 투사로 멘든 건 제주4.3(삼)에 대 왜곡 시도라수다.
2022년 검찰이 극우 단체 자료를 근거로 4.3(삼)수형인 특별재심 신청자 가운디 일부에 대 사상 검증을 덴 는 보도를 접 그는 재판부에 장문의 글을 썽 제출는 등
{ 최종 무죄 선고 이끌어내 }
적극적으로 진실 알리기에 나산, 결국 최종 무죄 선고를 이끌어 내어수다.
펭생을 옭아맨 연좌제 트라우마를 이겨낸 임충구 씨신딘 꼬만 렘이 이수다.
{ "4·3(삼) 가해자를 밝히곡 책임 묻는 기록 넹겨사" }
4.3(삼) 가해자를 밝히곡 책임을 꼭 묻는 기록을 넹겨사 덴 강조염수다.
{ 현광훈 }
가해자에 대 처벌이 아닌 후세덜신디 올바른 4.3(삼)교육을 위 방법이렌 암수다.
[녹취 임충구 / 4.3(삼)희생자 유족 ]
"정권은 유한곡 진실은 가려지지 아녑니다. 언젠가는 밝혀질 거우다."
kctv뉴스 이정훈이우다.
[표준어]
제목 : "부모 잃고 연좌제 시달리고"…"기록 남겨야"
[앵커]
제주 4.3 77주년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4.3의 아픔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족이 상당합니다.
4.3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연좌제에 시달리던 임충구 어르신은 아버지의 무죄 선고를 이끌어내기까지 그야말로 통탄의 세월이었습니다.
이정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 제주4·3 제77주년 증언본풀이마당 }
{ 제주 4·3평화기념관 }
여든을 앞둔 임충구씨는 4.3당시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얼굴은 희미하지만 그와의 마지막 밤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일제 강점기 제주농업학교를 졸업한 수재로
{ 4·3 당시 아버지 행방불명 }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받던 그의 아버지는 자신과 누이동생에게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지내라는 당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녹취 임충구 / 4.3희생자 유족 ]
"아버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면 야 충구야 누이와 싸우지 말고 엄마 말 잘 듣고 살고 있어라"
그렇게 아내와 자식 곁을 떠나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의 행방을 알게 된 것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00년입니다.
{ 행방불명 아버지 학살 암매장 사실 알게돼 }
4.3특별법 제정에 맞춰 수형인 명부가 공개되고 행방불명됐던 아버지가 지금의 제주공항에 학살 암매장됐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아버지가 행방 불명되고 서북청년단으로부터 이어지는 협박 속에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어머니 예비검속에 희생 }
눈을 피해 남에 집에 자식들을 맡기며 치열한 사투를 벌였던 어머니 마저 6.25 발발 직후 예비 검속으로 경찰에 끌려가 희생됐습니다.
졸지에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떠돌며 고생 끝에 중학교를 마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로 인정받았습니다.
{ 4·3 연좌제 평생 따라 다녀 }
하지만 연좌제는 그의 평생을 따라 다녔습니다.
공무원 임용고시에 합격했지만 발령은 기약이 없었고 사업차 해외 출장을 갔어도 국가 정보기관의 감시가 늘 따라 다녔습니다.
[녹취 임충구 / 4.3희생자 유족 ]
"홍콩에서 1박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호텔 문 밑에 메모지가 있어요. 펴보니 여기서 만나는 사람 이름을 자세히 다 적고 귀국하면 제출하라. "
{ 극우 역사 왜곡 시도…4·3진실 알리기 적극 나서 }
끝나지 않은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임충구씨를 투사로 만든 것은 제주 4.3에 대한 왜곡 시도였습니다.
2022년 검찰이 극우 단체의 자료를 근거로 4.3수형인 특별재심 신청자 가운데 일부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한다는 보도를 접한 그는 재판부에 장문의 글을 쓰며 제출하는 등
{ 최종 무죄 선고 이끌어내 }
적극적으로 진실 알리기에 나서며 결국 최종 무죄 선고를 이끌어냈습니다.
평생을 옭아맨 연좌제 트라우마를 이겨낸 임충구씨는 작은 바람을 밝혔습니다.
{ "4·3 가해자 밝히고 책임 묻는 기록 남겨야" }
4.3의 가해자를 밝히고 책임을 꼭 묻는 기록이 남겨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현광훈 }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아닌 후세들에게 올바른 4.3교육을 위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임충구 / 4.3희생자 유족 ]
"정권은 유한하고 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밝혀질 겁니다."
kctv뉴스 이정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