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제주인 기획2>민족교육의 산실 '역사 속으로'(8일)
최형석 기자  |  hschoi@kctvjeju.com
|  2025.09.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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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제주인 기획 뉴스 두번째 순서입니다.

과거 재일제주인 1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고향의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이어왔습니다.

기부금들은
전기나 수도, 도로 개설에 쓰이는 등 제주발전의 토대가 됐는데요.

애향심에서 비롯된 기부는
민족적 자각과 긍지를 갖게하는 민족교육의 역할이 컸습니다.

최형석 기자의 보도입니다.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에 있는 시립 기타츠루하시 소학교.

교실 입구에는
돌하르방 한 쌍이 놓여있고
안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걸려있습니다.

한국인 뿌리를 가진 아이들이
방과후 우리말과 역사를 배우고 우리 문화를 익히는 민족학급입니다.

이 학교에 민족학급이 생긴 건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1년 재일제주인 고 김용해 선생이
강사로 부임해 오면서 부터입니다.

제주시 이호동 출신인 김 선생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일본인도 어렵다던
교원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인터뷰 : 김성도 고 김용해 선생 아들>
"아버지가 일본에 와서 그때부터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일본에서 대학 시험을 거쳤고 게다가 교원자격증을 땄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선생은
이 학교에서 36년간 재직하면서
민족의 긍지를 가지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비록 생활비를 대기에도 부족한 박봉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민족교육에 대한 일념은
삶을 떠받드는 버팀목이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본명쓰기 운동이었습니다.

그를 거친 수료생은 1만1천500명에 이릅니다.

제자들이
일대기를 책으로 엮어낼 정도로
교포 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컸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지역 내 민족학교 건립의 불씨가 됐고
강한 애향심과 결속력으로 이어져
고향 제주 발전의 토대가 된 기부 활동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인터뷰 : 김명홍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오사카본부 단장>
"김용해 선생님이 안 계셕다면 민족학급이 생길 수 있었는가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생 다 바쳐서 다른 사람들은 시장에 가서 돈 버는 친구도 많은데도 자기는 가난한 생활 견디면서 학교에서 민족 교육 선생님으로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

고 김용해 선생이 몸담았던
기타츠루하시 소학교는 내년 인근 학교로 통합될 예정입니다.

한때 1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인구 감소로
폐교의 길을 걷게 되면서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던 민족학급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KCTV뉴스 최형석입니다.
(영상취재 현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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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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