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이 일어 난지도
어느덧 6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4·3으로 인해 몸에 생긴 상처는 물론
마음 속 상처도 아물지 않은
4·3후유장애희생자들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이경주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아흔이 다 되가는 양정순 할머니는
아직도 60여 전의 일을 잊지 못합니다.
아무런 죄없이 경찰에 끌려가
구타를 당해 청력을 잃었습니다.
25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부터 보청기에 의지해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씽크 : 양정순 / 4·3후유장애희생자(88)>
귀를 때려서 귀청이 터지고
코와 입으로 피가 났다. 그때 귀 막은 것이 지금까지 안 들린다.
보청기 안 하면 안된다.
한병생 할머니는 언제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무장대의 칼을 맞고 다리를 못 쓰게 된 것도 모자라
또 다시 경찰에 끌려가 영문도 모른 채 구타를 당했습니다.
얼마 후 치아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틀니를 맞추고
단 한번도 환하게 웃질 못했습니다.
<씽크 : 한병생/4·3후유장애희생자(81)>
저의 고통은 1년 내내 말해도 다 못한다.
양쪽 고통을 받아서, 폭도는 폭도대로 데려가서 닥달하고
경찰은 경찰대로 닦달하고..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남은 것이라곤 상처뿐인 김양행 할아버지.
눈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그 날의 기억은
할아버지의 다리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씽크 : 김양행/4·3후유장애희생자(82)>
"말로 해서는 표현이 안된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당해봐야 안다."
4·3사건 발생 66주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KCTV뉴스 이경주입니다.
이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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