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됐지만
4·3의 역사를 알리는 일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지난 2006년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4·3의 역사가 세상에 밝혀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발굴터 관리는 전혀 되지 않고 있는데요.
역사적인 현장이 무관심 속에
또다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경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4·3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시작된 유해발굴사업.
지난 2006년 화북지역을 시작으로 공항과 남원읍에서
모두 396구의 유해가 발견됐습니다.
당시 유해발굴은
60여 년 동안 어둠 속에 갇혀있던 4·3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브릿지 : 이경주>
"4·3유해발굴사업이 이뤄진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현장을 찾아와보니 당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난 1948년 수 십여 명이 희생된 별도봉.
8구의 유해가 발견된 별도봉 발굴터는 매립된 채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이 곳이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판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굴 안에 남아 있는 터와
조사 당시 구획을 구분하던 줄만이
이 곳에서 발굴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
아무런 관리없이 방치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3구의 유해가 발견된 화북천 일대 발굴터는
하천정비사업으로 모두 매립돼 자취를 감췄습니다.
특히 발굴터 대부분이 사유지로
토지 매입은 물론 관리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발굴현장이 보존돼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는 상황.
역사 교육 현장으로도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 최희영/제주4·3연구소 사무국장>
유해발굴 현장은 잘 보존하고 유적지 안내표시를 해서
발굴현장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3에 대한 교육이고 미래 세대에게
<수퍼체인지>
줘야할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66년 전, 그 날의 아픔이 묻혀 있는 유해발굴터.
4·3 역사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하면서도
역사의 현장은 방치된 채 또다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KCTV뉴스 이경주입니다.
이경주 기자
idea_kj@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