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태어난 원희룡.
초등학교 내내 운동화는 커녕
구멍난 타이어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닐 정도로 생활형편은 어려웠다.
어린 시절 리어카 바퀴에 발가락이 끼어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아직도 발가락 두 개가
위를 향해 뒤틀린 장애와 시련은 어려운 그의 시절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원희룡 주변에는 항상 책이 있었다.
책이 장난감이었고 책이 친구였다.
학창 시절,
가난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공부라고 믿었고
성적은 고등학교 이후 눈에 띄게 향상됐다.
그리고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이라는 영예를 안게 됐다.
서울대학교 법대 입학은 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80년대 시대의 충격속에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됐고
그 대가도 톡톡히 치러야 했다.
경찰서 구금과 폭행,
유기정학, 공장 노동자로서의 생활...
이같은 시대가 결국 그의 인생을 바꿔놓고 있었다.
현실의 세계에서 좀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하고자 사법시험을 준비해
수석으로 합격했고,
이후 서울지검을 비롯해 4년간의 검사 재직 후 변호사 생활로 변신했다.
그는 2천년 제16대 총선 직전 당시 거세게 분
'젊은 피' 수혈 바람을 타고 곧바로 정계에 입문하게 되고
16대를 시작으로 17.18대 내리 3선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소장파 정치인들과
보수적인 당 노선을 비판하며
당내 개혁파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한나라당 최고위원, 사무총장, 당 쇄신특별위원장을 역임했고
2007년에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2010년에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원희룡은
세계 최강국 시절이던 영국에서
부의 원천인 노예무역을 폐지한 월리엄 윌버포스,
노예해방을 일궈낸 미국 링컨을 정치적 모델로 삼고 있다.
그래서 원희룡은
이번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관료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행정이 아니라
지역을 구성하는 도민들이
수평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면
관료기구가 집행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그는 독특한 선거방식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무차별적인 홍보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유세차량이나 로고송 없이
감귤컨테이너 박스와 휴대용 마이크를 이용한 유세,
그리고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지 않고
자원봉사형태로 운영하는 원 후보의 전략은 혁신으로 받아졌다.
씽크)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당선자
제주는 저를 낳고 키워주신 어머니입니다. 사실 어머니한테는 맹목적인 사랑을 받기만 하고 되갚지를 못해서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집안을 더 키워서 효도할 수 있다라는 그런 기회로 생각하고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제 4년간 제주특별자치도의
새로운 수장을 맡게 된 젊은 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그의 말처럼 협치를 통한 화합의 제주, 강한 제주,
세계속의 제주로 거듭나기를 제주도민들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