青铜器时代支石墓在涯月下加里发现
青铜器时代代表性墓葬形式——支石墓10几年后 在涯月邑下加里再次被发现。
特别值得注意的是,此次发现的是该地区此前从未有过的支石墓形态。有望改写济州历史遗迹的版图。
详细内容,请看记者王天泉的报道。
<济州市涯月邑下加里》
这里是济州市涯月邑下加里的玉米地。
玉米地旁边放着一块巨大的石头。
上部保持着凹凸不平的自然状态,但是越往下越光滑。
这应该是称为“上托面”的巨石下面起支撑作用的石头。
<支石墓“上托面·垫石”同时发现,“圣穴”亦可见》
称为垫石的小石块横卧在地里。
石头表面可以看到具有信仰意义的人为凿刻痕迹的“圣穴”。
<济州传统样式支石墓,2000年以后首次发现》
完整保留上述特征的济州传统样式的上石式支石墓是10余年后再次在济州发现。
《金贞焕(音)/济州考古研究所研究员》
“支石墓上托面按自然形态使用,下部墓室形态和上托石一样,用多张石板围成。是墓室和石室同时使用的济州式支石墓。”
《预计造成于公元前4-6世纪青铜器时代》
据推测建成于公元前4-6世纪的青铜器时代。
支石墓长约4米,重约6吨。
考虑到移动这么大的石头,需要200多名成年人,估计这一带应该曾聚居着一定规模的人群。
特别是,从前在济州市外都洞、涯月邑光令里分布的这种形态的支石墓在更西边的区域被发现,具有重要的考古学价值。
《金贞焕(音)/济州考古研究所研究员》
“根据( 遗迹 )多集中在北部地区,并向西扩散的情况,青铜器时代代表性墓制——支石墓,从济州岛整体来看,广泛形成于济州的西北部。”
青铜器时代代表性的墓葬形式——支石墓的再次发现,正在改写济州人类遗迹的版图。
《王天泉》《金承澈》
KCTV 新闻 王天泉
'청동기 고인돌' 애월 하가리서 최초 발견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이죠,
지석묘, 즉 고인돌이
애월읍 하가리 지역에서
10여년 만에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형태의 고인돌이어서
고고학적 의미를 더하고 있는데요,
제주의 유적 지도를 다시 그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왕천천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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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의 수수밭입니다.
밭 한켠에 큼직한 돌이 놓여 있습니다.
윗면은 울퉁불퉁한 자연 그대로인 반면,
아래로 갈수록 매끈하게 다듬어졌습니다.
큰 돌인 '상석' 아래에는 받침돌의 용도로 보이는
<고인돌 '상석·지석' 동시에 발견…'성혈'도 보여>
작은 돌들인 '지석'이 누워 있습니다.
돌 표면에는 옛 사람들이 신앙적인 의미를 담아
인위적으로 긁어낸 흔적인 '성혈'도 보입니다.
이런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주 전통 형태 '위석식' 고인돌, 2000년도 이후 첫 발견>
제주 전통 형태의 '위석식' 고인돌이
10여 년 만에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 김진환 / 제주고고학연구소 연구원 >
지석묘 상석을 자연 그대로 사용했고 밑에 무덤방을 상석의 형태와 똑같이 여러 매의 판석을 돌려서 축조했습니다. 무덤방과 석실을
동시에 사용한 제주도식 고인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인돌의 형성시기는
<기원전 4~6세기 청동기 시대 형성 추정>
기원전 4세기에서 6세기 사이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인돌 길이는 약 4미터,
무게는 6톤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정도의 고인돌을 옮기려면
성인 200명 정도가 필요한 것을 감안할 때
이 일대에 일정규모의
집단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종전에는
제주시 외도동, 애월읍 광령리까지만 분포하고 있던
이런 형태의 고인돌이
보다 서쪽에서 발견됐다는 데
고고학적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 김진환 / 제주고고학연구소 연구원 >
(유적은) 북부지역에 많이 모여 있는데 서쪽으로 세력이 확장되는 현상이 보이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묘제라고 할 수 있는 고인돌이 ///
보인다는 것은 제주도의 청동기 유적이 제주도 전체로 봤을 때
북서쪽에 넓게 형성돼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고인돌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제주의 유적 지도를 새로 그리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왕천천>< 김승철 >
KCTV 뉴스 왕천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