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恨 풀어달라"…4.3 수형인 재심 청구
김용원 기자  |  yy1014@kctvjeju.com
|  2017.04.19 15:29
4.3 사건 당시 군사재판에 의해
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겪은
도민들은 2천 5백명으로 추정됩니다.

수형인 생존자들이 약 70년 만에 당시 판결은
무효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보도에 김용원 기자입니다.
내년 아흔을 바라보는 부원휴 할아버지.

1948년, 20살 나이에
인천 소년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형무소에서의 고통의 나날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씽크:부원휴(89세)/4·3 수형인>
"군 막사로 가서 지독하게 전기 고문도 받고
쓰러지면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고.."

93살의 현우룡 할아버지는
1949년 육군본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이적 혐의로 수감됐습니다.

대구와 부산 마산 형무소 등을 옮기며
무려 7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겪었습니다.

<씽크:현우룡(93세)/수형인>
"두드려 맞아서 지금까지 골병들어
잘 걷지도 못하는데 너무 억울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 고생을 당했는가 그런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4.3 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사재판에 의해 수감된
제주도민은 2천 5백여 명.

이 가운데 수형인 생존자들이
평생의 한을 풀고자 법원에 모였습니다.

당시 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섭니다.

<씽크:임문철/4.3 도민연대 고문>
"초법적인 군사적인 명령에 의해 벌어진
4·3 당시 군법회의야 말로 초사법적 국가범죄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들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열렸던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와 이적 혐의 등으로
1년에서 많게는 20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영장 없이 임의로 체포돼
군경에 의해 자백을 강요받고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도 수형인들의
진술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군법회의는 판결문도 작성되지 않았다며
정상적인 재판 절차를 무시한
유죄 판결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장완익/재심 청구인단 변호사>
"재판이 있었는지, 재판이란 외관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에 헌법에 따라 형사소송법에 따라 절차가 필요했는데
절차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 자체에 대해
판단을 구하는 재판이 될 것입니다."



약 70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수형인 재심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앞으로 사안별로 다시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고통의 세월을 보낸
수형인 생존자들은 하루빨리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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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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