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70주년을 맞아 '70년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을
주제로 4,3증언 본풀이 마당이 마련됐습니다.
4.3으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해버린 삶의 이야기도
함께 나눴습니다.
김수연 기잡니다.
1941년 제주시 노형동에서 태어난 이삼문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는 8살 때, 4.3으로 온가족을 잃었습니다.
돌아갈 집도, 함께할 가족도 없는 고아로
친척집과 고아원을 떠돌며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13살이 되던해, 연고도 없는 목포에 도착해
박씨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이 할아버지.
41년생 이삼문 할아버지는 그렇게 53년생 박삼문으로 호적을 바꾸고
평생을 살아가게 됐습니다.
이후, 60여년만에 처음 찾은 고향 제주.
이 할아버지는 제주에서 죽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싱크 : 이삼문/4·3 피해자>
"(4·3 평화공원에) 내 위패가 있을 때, 나도 행방불명인으로 돼 있었구나… 생각해보니까 난 살아 있는데 세상을 살다 보니 성만 바뀌었는데 그 위패를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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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필요가 없어서 위패를 내려달라고…."
평생을 박삼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할아버지는 4.3 유족으로 등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계자들은 빨리 4.3 특별법이 개정돼야 이같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씽크 : 조정희/제주 4·3 연구소 연구원>
"지금 제적등본이나 호적으로 희생자와의 가족관계가 인정돼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특별법이 개정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20살이 되던 해 고향 서귀포를 떠나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온 송복희 할머니.
송할머니에게 제주는 여전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마을의 집들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사람 목숨도 아무렇지 않게 사라졌던 시절.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광경들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씽크 : 송복희/4·3 피해자>
"군대 트럭이 엄청난 속도로 오고 있었는데 우리집이 도로 옆에 있었습니다. 마침 우리집이 모두 불에 탔기 때문에 공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군인의 트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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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로 달리다 그대로 조카를 치면서 깔렸습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제주 4.3은
여전한 아픔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수연입니다.
김수연 기자
sooyeon@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