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제주도를 요새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요,
당시 일본이 제주에 위안소를 설치했고
1945년 4월부터 약 4개월여동안 운영했다는
연구 결과와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조승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성산일출봉 주변에 있는 단독주택.
제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양철 지붕 집입니다.
그런데 당시 16살이었던 오시종 할아버지에게는
단순한 집이 아닌,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이 자국 군인을 위해 운용하던
위안소였다는 것입니다.
<오시종 / 성산읍 성산리(당시 16세)>
"매일 정복 입은 사람들이 들고 나고 했으니 눈으로 봐도, 눈치로도 (위안소였다는 것을) 뻔히 아는 것 아닙니까."
제주대 평화연구소는
마을 주민 증언과 현지 조사,
일본측 사료를 토대로
성산읍에 위안소 2곳이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4월부터
해방을 맞은 8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위안소가 운영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안소에서는
제주말을 쓰던 여성을 포함해 예닐곱명이
요카렌, 즉 자폭용 병기 부대원을 상대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조성윤 / 제주대 평화연구소장>
"여성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들어와서 2곳 위안소에 살기 시작했고, 그 앞에 (군인들이) 순번을 기다리며 줄을 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그동안 위안소는 주로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보고돼 왔는데
제주에도 있었다는 주장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오 할아버지 증언을 제외하고는
실제 위안소를 이용했던 군인이나 위안부 여성의 존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한경면 고산지역에 주둔하던 부대가
'여가를 보낼만 한 곳이 없다'고 기록한 데서
성산에는 위안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고성만 / 제주대 교수>
"여가 혹은 전우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던 그들만의 끈끈한 전우애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위안소와 연결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과제입니다."
한편 연구진은 논문이 발표된 시점이 최근이고,
증언자인 오 할아버지 건강 상태 등을 감안해
발표 시기를 정한 것이라며
악화된 한일 관계와의 연관성은 경계했습니다.
KCTV뉴스 조승원입니다.
조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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