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이 수탈을 위해 전국적으로 도로망을 새로 조성했는데 이를 신작로라고 불렀습니다.
제주에도 신작로가 조성되면서 물자의 이동 방식이 변화되고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옮겨가는 등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수탈을 목적으로 한 도로였지만 제주 변화의 중심이었던 신작로.
허은진 기자가 정리해 소개해드립니다.
새로 만든 길, 신작로.
1910년 한일강제합병 이후 일본이 조선에서의 수탈을 위해 본격적인 도로망 건설에 나서는데 이때 전국적으로 깔린 도로를 신작로라 불렀습니다.
제주에서도 1914년 도민들의 토지와 노동력을 강제로 착취해 신작로가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신작로가 조성되면서 경제와 문화, 행정의 중심이 중산간 마을에서 해안가 인근 마을로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박경훈 / 前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신작로가 들어서면서 해촌 지역으로 마을과 물자들이 내려가기 시작해요. 양촌 지역의 마을들이 서서히 가난해지고 물질적 부가 해촌에 쌓이게 되죠."
제주 해안 일주도로인 1132번 지방도, 한라산 횡단도로인 5.16도로도 신작로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뿐 아니라 과거 신작로였던 정의로와 대정로는 각각 번영로와 평화로에 대부분 포함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박경훈 / 前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번영로와 평화로도 일제 당시 이 도로를 손을 봅니다. 산업도로 형식으로 사용을 하죠. 그 이후 포장을 해서 대동여지도에 나왔던 도로가 여전히 지금도…"
신작로가 생기며 물자의 이동은 해상에서 육로로 변했고 이후 자동차 산업의 발전으로 신작로의 기능은 더욱 확대됐습니다.
수탈을 위한 도로였지만 해방 이후에도 중요한 도로로서 제주의 경제와 사회를 변화시킨 신작로.
KCTV특별기획 10부작.
제주의 가치 재발견 제4편 새로 만든 길 '신작로'는 내일(18일) 오전 8시 30분 첫 방송됩니다.
KCTV뉴스 허은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