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발포사건 74주년…4·3 비극의 서막
조승원 기자  |  jone1003@kctvjeju.com
|  2021.02.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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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오늘은 102주년 3.1절인 동시에 제주도로서는 더 큰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74년 전인 1947년 3월 1일, 관덕정에서 발생한 발포 사건이 1948년 제주4.3 발발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인데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제주4.3으로 이어지게 됐는지 조승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86살의 양유길 할머니가 오랜만에 모교인 북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74년 전, 3.1절 28주년 기념집회가 열린 바로 그 장소를 또렷이 기억합니다.

<양유길 / 3·1사건 당시 북국민학교 5학년>
"여기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큰 깃대에 써서 우리는 작았으니까 올려다보고 그랬지."

자주독립 국가 수립을 염원하며 제주 전역에서 도민 3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

집회 이후 가두시위 과정에서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굽에 치인 사고가 발생하며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사고를 수습하지 않는 경찰에 군중이 항의했고 경찰은 발포로 대응한 것입니다.

<양유길 / 3·1사건 당시 북국민학교 5학년>
"숨어서 봤지. 막 총소리가 나고 사람이 쓰러지고 하는 것을 봤지."

발포 사고로 군중 6명이 숨졌지만 당시 미군정 당국과 경찰은 유족을 위로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분개한 도민들은 유례없는 민관 총파업으로 맞섰습니다.

<양정심 /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
"이 분노를 제주도의 공동체 문화 속에서 조의금 모금하고 가만 있지 않는, 도민들의 주체적인 모습으로 총파업을 결의하고 이끌어 나가죠."

하지만 미군정은 총파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오히려 강경 탄압에 나섰습니다.

이듬해 4.3이 발발하기 전까지 2천 500여 명이 검속되고 고문치사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도민 분노는 끓어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찬식 / 전 제주4·3연구소장>
"3.1사건 때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했던 것들이 누적되면서 탄압은 쌓이게 된 것이죠. 대내외적 문제와 연결되면서 48년에 무력 투쟁으로 간 게 아닌가…."

3.1절 당시 자주독립에 대한 염원을 총탄으로 탄압하고 결국 4.3에 이르게 한 미군정은 7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KCTV뉴스 조승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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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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