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보상금 지급과 수형인 재심, 가족관계 정정 등
75주년을 맞는 제주 4.3은
다양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통해
대한민국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해결과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특히 4.3 유족들이 겪어야 했던
연좌제 피해는
아직까지 실태 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요.
4.3 추가진상조사의 과제로 시작되고는 있지만
근거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수희 기자의 보돕니다.
1948년 제주섬을 뒤덮은 비극의 역사 4.3
7년 7개월 만에 끝난 4.3의 피해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남겨진 유족들은
가족 중 누군가가 4.3과 관련이 됐다는 이유로
폭도,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연좌제의 희생양이 됐습니다.
1948년, 비극적인 역사가 시작된 해에 태어난
현봉준 할아버지는
4.3 수형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연좌제의 사슬에 묶였고
배움의 길도 포기한 채
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주도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터뷰 : 현봉준 / 4·3수형인 아들>
"아버지가 형무소 갔다가 폭도라고, 죄가 있어서 폭도라고. 폭도새끼라고. 저 놈은 폭도새끼라고 손가락질하고.
많이 맞은게 지금도 억울해요.
그냥 뭐 살짝 때리는 것도 아니고 막 입술에 피가날 정도로 맞았으니까 트라우마가 지금도 있어가지고....”
조천읍 북촌 출신 윤응식 할아버지 역시
아버지가
수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육군 사관 학교에 지원할 기회를 박탈 당했습니다.
<인터뷰 : 윤응식 / 4.3 유족>
"연좌제 때문에 떨어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형무소에 있었던 걸 알고 그러니까 포기한 거죠.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4.3과 관련이 있는 집안은
경찰 명단에서
소위 빨간줄이 쳐졌고 감시의 대상이 됐습니다.
<인터뷰 : 김갑생 / 과거 동복리장>
"그때 경찰 봉급이 7천원 쯤 됐어요. 3천원을 줘야 돼. 그래야 빨간 것이 없어져. 8촌이고 10촌이고 같은 부씨라고 다 얽어매 버리는 거지.
무마 시키지 않으면 자식이 배를 타든지 선생을 하든지, 못해. 이게 (빨간줄) 없어져야 돼.“
당시 연좌제의 꼬리는
75년이 지난 지금도
실제 경찰 문서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제주동부경찰서 문서고에 보관중인 밀항삭재카드.
일본 등으로 밀항했던 이력이 있는 도민을 별도로 관리한 대장입니다.
나이와 직업, 재산,
사상과 성향까지 상세한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특히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이
4.3과 관련돼 있을 경우
요시찰 여부 항목에 상세한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4.3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사찰했다는 연좌제의 증거 입니다.
이렇게 경찰 기록은 남아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묻혀 있던
4.3 유족들의 연좌제 피해조사는 지난해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미 고령이 된데다
당시의 피해를
꺼내들기 조차 거북스럽고,
증언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도 미미한게 현실입니다.
<인터뷰 : 김은희 />4·3추가진상조사단 조사2팀장>
자료가 공개된 적이 없고. 경찰이나 군에서 신원조회이다 보니까 공개하기가 까다로운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한테 확보된 현실적인 자료는 없어요. 내용을 보면
가족이 누구누구고. 이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이런 것들이 세세하게 조사돼 있어요. 이런 게 다 연좌제 관련된 거거든요. 그런 내용은 확보했지만 자료가 없어서
(조사를) 못해왔다 할 수 있겠습니다.“
4.3이 끝났다지만 연좌제로 또 다시 고통받았던 유족들.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고
유족들의 한을 풀어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KCTV 뉴스 문수희 입니다.
(영상취재 : 좌상은)
문수희 기자
suheemun43@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