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당시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행방불명됐던 고 양천종 희생자의 유해가 70여 년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유해가 4.3 희생자로 확인돼 제주로 봉환된 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김경임 기자의 보도입니다.
하얀 천에 쌓인 상자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지난 2019년, 옛 광주형무소 터에서 발굴된 고 양천종 희생자의 유해입니다.
4.3 당시 집이 불타자 가족들과 산으로 피신했다가 선무공작에 속아 내려왔다 토벌대에 붙잡혔고, 주정공장에 있다가 풀려났지만 또다시 잡혀가 1949년 12월 고문 끝에 광주형무소에서 희생됐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갖은 노력에도 유해는 수습하지 못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75년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천종 희생자의 신원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에서 제공받은 옛 광주형무소 터에서 발굴된 무연고 유해 261구의 유전자 정보를 4.3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와 대조하는 과정에서 확인됐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 유해가 제주로 봉환된 건 지난해 북촌리 고 김한홍 희생자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이숭덕 /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교수]
"저희가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접근 방법을 찾았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실제 도외에서 사망하신 분들에 대한 자료는 더 찾기가 어려운데 그분들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또 기대 수치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해 봅니다."
행방불명 상태였다 다시 이름을 찾은 양 씨의 유해는 4.3평화공원 봉안실에 안치됐습니다.
70여 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아버지.
긴 기다림의 세월 속 94살 백발 노인이 된 딸은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습니다.
[양두영 / 고 양천종 희생자 딸 (94세)]
"마음이 좋고 말고요. 오라고 해서 (아버지를) 보니까. TV에 보면 4·3 사건은 자꾸 나와 나오긴. 울다 울다 눈물도 안 나 하도 우니까. 우리 아버지는 행방불명이니까 맞아서 죽었나 굶어 죽었나 그렇게만 들어서 울었지."
4.3 수형인 명부에 기재된 행방불명 수형인은 1천 7백여 명.
제주도와 4.3 평화재단은 경산과 전주 김천 등 4.3 수형인 기록이 남아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KCTV뉴스 김경임입니다.
(영상취재 : 현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