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발굴 20주년 기획뉴스 두 번째 순서입니다.
대전 골령골에 이어
한국전쟁 발발 이후
3천 500명이
집단 학살된 곳으로 알려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도
제주 희생자가 처음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진이 직접
유해가 발굴됐던 경산 코발트 광산을 현장 취재했는데요.
아직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못한
수직절벽 미공개 구간도 최초로 영상에 담았습니다.
김경임 기자의 보도입니다.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폐코발트광산.
6.25전쟁 발발 직후
대구와 부산형무소 재소자들과
보도 연맹원 등 3천500여 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 해방 직전 폐광했지만
광물을 운반하던 수직 갱도는
군경이 사람들을 총살해 떨어뜨리는 장소로 이용됐습니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
코발트 유족회의 자체 발굴을 포함해 6차례 작업을 진행했고
수직갱도와 이어진 물웅덩이 등에서
유해 5백여 구가 발굴됐습니다.
<장명수 /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자 유족회 상임이사>
"대구 교도소에서 계속 경산역을 거쳐서 이쪽 (광산) 수직 1굴까지도 수송차가. 그러니까 그 당시 군용트럭이죠. 군용트럭이 올라가는 걸 본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사람들이 결국은 여기서 전부 다 죽임을 당했거든요. 그러면 그분들이 여기 다 있다고 봐야죠."
당시 대구 형무소에 수감됐던
제주 행불인 상당수가
이 곳에서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돼 왔는데
최근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2구가 제주 행방불명 희생자로 확인됐습니다.
<나정태 /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자 유족회 이사장>
"제주엔 (희생자) 두 분이 확인됐지만 그걸로 인해서 진실이 밝혀졌고. 유언비어가 실제가 됐고. 저희들도 희망이, 이제 여기에 대구형무소에서 많이 오셨잖아요. 고인이 되셨는데. 거기서 찾았다는 게 더 앞으로 희망도 있고. 그렇다면 우리 유족 분들도 '우리 아버지 뼈도 찾을 수 있겠다' 제주에는 두 분이지만, 우리 코발트에는 큰 의미입니다."
<김경임 기자>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 중 제주 희생자 처음으로 확인됐는데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해 3천여 구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해가 발굴된 지점을 벗어나 캄캄한 갱도를 따라가자,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높게 깎아지른 수직 절벽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직 절벽과 굴이 만나는 지점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흙더미가 위태롭게 쌓여있습니다.
아직 발굴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곳이지만
더 많은 유해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장정민 / 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 (발굴 참여)>
"한 1m 정도 바닥으로 더 깊게 저희가 유해 수습을 해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유해들이 많이 발견됐습니다. 확실하게 많은 수량의 유해들이 더 있을 거다. 이렇게 추측은 하고 있고. 그리고 그 안쪽 수평 굴, 조명 시설이 없는 어두운 그 안쪽까지 유해가 발견은 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가 조명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 봤거든요."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무덤이지만
국가 차원에서 이를 수습하려는 노력은 부족합니다.
예산이나 붕괴 위험성 등을 이유로
발굴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산 코발트 광산 뿐 아니라
대구 골령골과
전주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장명수 /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자 유족회 상임이사>
"지금 해가 바뀌면 (유족들이) 몇 분씩 계속 돌아가시는 이런 상황인데. 그래서 저희들 마음이 조급하고 (유해 발굴을) 빨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그거죠. 고령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걸 이대로 두면 나중에는 그냥 무덤같이 이대로 방치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죠. 그래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물속에 수장된 유해라도 안전하게 편안하게 따뜻한 곳에 모셔드리는 게 도리이지 않겠나."
진화위 3기가 출범했지만
집단 수용시설과
해외 입양기관 인권침해 사건 등 진상 규명 대상이 늘어나면서
유해 발굴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땅 속의 유해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고
기억하는 이들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장정민 / 한빛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 (발굴 참여)>
"1차적으로 매우 습한 상황이고 지하수가 계속 흘러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발굴 당시) 뼈의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상황이었고요. 토사하고 섞여 있다 보니까 토압에 의해서 뼈들이 다 으스러져 있었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희생자와 유족들의 한은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국가폭력으로 해체된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건 국가의 몫으로 남고 있습니다.
<나정태 /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자 유족회 이사장>
"최하가 지금 76살 아닙니까. 1950년도 사건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유족들은) 고인이 자꾸 되고 있는데 진실은 밝혀지지도 않고. 속상하죠,"
KCTV뉴스 김경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