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이 발생한지 올해로 68년이 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끔찍한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생존자들에게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4.3의 사건 피해당사자들이
그날의 가슴아픈 기억을 본풀이 마당에서 풀어 놓았습니다.
김수연 기잡니다.
윤옥화 할머니는
1949년 1월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8살 소녀였던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고
눈 앞에서 세살짜리 여동생이 일곱 군데나
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윤 할머니는 다행히 등에 군인들이 쏜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총상 후유증은 평생을 따라다녔습니다.
<씽크 : 윤옥화/당시 조천읍 북촌리 거주(73세)>
"등에 맞았어요. 총상이 쑤시는 데가 있어요."
이렇게 4.3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윤 할머니는 유족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4.3당시 어머니와 아버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았다는 이유로
법이나 제도적으로 인정이 안 된다는 겁니다.
<씽크 : 윤옥화/당시 조천읍 북촌리 거주(73세)>
"지금이라도 조카들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신 후유장애로 해서 병원혜택이라도 좀 받았으면 좋겠고, 제가 원하는 건 (호적상 친부모님) 밑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7살 고완순 할머니에게
4.3은 삶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사건입니다.
북촌리 마을 총살현장에 가족들과 함께 끌려갔지만
총살 직전 '사격중지'라는 명령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고 할머니.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 이후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씽크 : 고완순/당시 조천읍 북촌리 거주(77세)>
"호기심이 많은 소녀였습니다. 꿈도 많았고. 그런데 4·3이 제 인생의 모든 걸 가져가버린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데 자라는데 배고픔
-------수퍼체인지--------
그런 걸 너무 많이 겪다보니까"
수많은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후 침묵의 세월을 살아와야 했던
고 할머니는 마음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북받쳐오릅니다.
<씽크 : 고완순/당시 조천읍 북촌리 거주(77세)>
"옛날에는 연좌제라는 게 있어서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까 좋은 세상도 만나게 되고..."
4.3에 대해 자세히 배울 길이 없었던 학생들은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을 전해듣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인터뷰 : 김하신/제주시 도남동>
"실제로 들으니까 더 울컥하고 만약 제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이렇게 말 꺼내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얘기해주셔서 감사해요."
4.3사건이 일어난지 68년.
그날의 가슴아픈 상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KCTV뉴스 김수연입니다.
김수연 기자
sooyeon@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