济州岛也有日本慰安所,首份证词出现
김광환 PD  |  kkh007@kctvjeju.com
|  2019.07.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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济州岛也有日本慰安所,首份证词出现

太平洋战争末期,
日本人想把济州岛建成要塞的事实,通过很多记录为人所知.

当时,日本人还在济州岛设置了慰安所
从1945年4月开始,运营了4个月
相关研究成果和证词被公开了.

下面请看记者的详细报道.


《城山邑城山里》
位于城山日出峰附近的一座单独住宅。

有着济州任何地方都能寻常可见的洋铁屋顶。


《日本军城山里慰安所公开记者会》
但是,对当年只有16岁的吴世宗老人来说
这可不是一般的房子
在他的记忆里有着其他的用途。

这里是日本军为本国军人开设的慰安所。


《吴世宗/城山邑城山里(当时16岁)》
每天穿着正装的人进进出出,
难道不是打眼一看就清楚的事吗?


《居民证词、现场调查、日方资料分析结果:设有两处慰安所》
济州大学和平研究所
以村民的证词、现场调查
和日方资料的分析为基础
发表论文,认为在城山邑有两处慰安所。


研究团队认为
从太平洋战争末期的1945年4月起
到韩国解放的8月份为止
慰安所运营了4个月的时间。

证词说
慰安所里有包括说济州话的女性在内
的6.7名慰安妇
服务对象是海军飞行预科练习生,
也就是神风特工队队员。


《曹成尹(音)/济州大和平研究所所长》
据说,一次来了多名女性,在两处慰安所里生活,
经常可以看到(慰安所)前面军人抽号排队等待的情况。

此前,慰安所主要
在日本和中国等海外有相关报告
认为济州有慰安所尚属首次。


《仅有目击者的证词,军人·女性是否存在,没有证据》
但是,除了吴姓老人的证词
能实际证明有使用过慰安所的军人
或者慰安妇的证据
尚无法确认。


《高山部队没有送来女人的地方,》

同一时期,驻扎在翰京面高山地区的部队有
“没有度假的地方”的记录,
仅仅是根据这一点推测城山有慰安所而已。


《高成万(音)/济州大教授》
在没有留下休假或战友会记录的他们身上,
在战友情里面还有什么事情
是不能不联系到慰安所的,
这也是今后的课题。

另一方面,研究者表示最近发表论文是
考虑到作证的吴姓老人的健康情况
确定的发表时机,
实际上是与正在恶化的韩日关系有关。

《王天泉》《玄侊训》
KCTV新闻 王天泉 "제주에도 日 위안소 있었다"…첫 증언 나와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이 제주도를 요새로 만들려 했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데요,

당시 일본이 제주에 위안소를 설치했고
1945년 4월부터 약 4개월여동안 운영했다는
연구 결과와 증언이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왕천천 기자의 보도입니다.
=============================================
< 성산읍 성산리 >
성산일출봉 주변에 있는 단독주택.

제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양철 지붕 집입니다.

< 일본군 성산리 위안소 공개 기자회견 >
그런데 당시 16살이었던 오시종 할아버지에게는
단순한 집이 아닌,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이 자국 군인을 위해 운용하던
위안소였다는 것입니다.

< 오시종 / 성산읍 성산리(당시 16세) >
매일 정복 입은 사람들이 들고 나고 했으니 눈으로 봐도, 눈치로도
(위안소였다는 것을) 뻔히 아는 것 아닙니까.

<"주민 증언, 현지 조사, 일본측 사료 분석 결과 위안소 2곳 설치" >
제주대 평화연구소는
마을 주민 증언과 현지 조사,
일본측 사료를 토대로
성산읍에 위안소 2곳이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4월부터
해방을 맞은 8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위안소가 운영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안소에서는
제주말을 쓰던 여성을 포함해 예닐곱 명이
요카렌, 즉 자폭용 병기 부대원을 상대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 조성윤 / 제주대 평화연구소장 >
여성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들어와서 2곳 위안소에 살기 시작했고, 그 앞에 (군인들이) 순번을 기다리며 줄을 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그동안 위안소는 주로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보고돼 왔는데
제주에도 있었다는 주장은 처음입니다.

< 목격자 증언 뿐…군인·여성 존재, 근거 자료 없어 >
하지만 오 할아버지 증언을 제외하고는
실제 위안소를 이용했던 군인이나 위안부 여성의 존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 자료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산 부대 '여가 보낼 곳 없다' 기록…성산 위안소 추정" >
같은 시기 한경면 고산지역에 주둔하던 부대가
'여가를 보낼만 한 곳이 없다'고 기록한 데서
성산에는 위안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입니다.

< 고성만 / 제주대 교수 >
여가 혹은 전우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던 그들만의 끈끈한 전우애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위안소와 연결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과제입니다.

한편 연구진은 논문이 발표된 시점이 최근이고,
증언자인 오 할아버지 건강 상태 등을 감안해
발표 시기를 정한 것이라며
악화된 한일 관계와의 연관성은 경계했습니다.
<왕천천><현광훈>
KCTV뉴스 왕천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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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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