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획 ③> 해체된 가족, 공동체 회복 주체 '어멍'
김용원 기자  |  yy1014@kctvjeju.com
|  2024.12.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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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TV 4.3 송년 기획 세번째입니다.

제주 여성들은 4.3에서 살아남았지만 불안정한 시국 탓에 법적인 가족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각종 권리 행사의 주체로도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여성 유족들의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살아남은 어멍들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김용원 기자입니다.

나라를 뒤흔든 비상 계엄 선포에 4.3을 겪은 고완순 어르신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70여년 전 4.3 계엄령 비극의 두려움이 엄습했고 나라를 향한 원망과 분노가 차 올랐습니다.

[고완순/4·3 유족(85세)]
"자유민주주의가 되니까 이렇게 데모도 할 수 있잖아. 우리 땐 그냥 죽으라면 어디 가서 골방에 갇혀야 했고 어디 가려고 하면 팔에 도장 찍고 마을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4·3 때에는.
잘 살려고 하는데 또 사리사욕 채우려고 계엄령 선포가 웬 말이야."

1949년 1월 17일, 북촌리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에 죽자 군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 마을 주민 3백여 명을 모아놓고 한날 한시에 죽였습니다.

아비규환 속에 살아남은 어르신은 매일 아침마다 마을 위령비를 찾아 원혼을 위로합니다.

[고완순/4·3 유족(85세)]
"강영심 어른도 북에서 대한민국, 제주도 와서 이름도 없이 학살당해서 돌아가셨어요."

4.3에 아버지와 아들, 남편을 잃은 어멍들은 남은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게 유일한 존재 이유였습니다.

연좌제 피해를 입을까 호적이나 족보에 자녀의 이름을 올릴 수 없었고 관공서를 가는 것도 무서워 출생 신고나 실종, 사망신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 : 강경숙 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
"남성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양자로 가고 호적에도 올라갔는데 남성 가장을 잃은 집안의 딸이나 어머니는 호적에 올리지 못한 거예요.
내 인생의 존재나 삶의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굉장히 힘들어하신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호주 성원권이 박탈됐다는 의미는 이후에 재산 분할이나 상속권에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거기에서도 배제되는 3중 4중의 어떤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정부의 가족관계 불일치 실태조사에서도 정정 대상 유족 208명 가운데 76%는 여성이었고 혼인 여성의 약 80%는 사실혼 관계였습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정작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되거나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여성들이 갖고 있는 공적인 어떤 지위는 여전히 취약한 부분들이 있었고 그런 모순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고, 가족관계를 회복하는 문제도 사실 가장 보수적인 질서를 흔드는 작업들인데 그 보수적인 질서의 문제를 가장 정면으로 맞닥뜨린 4·3 주체가 바로 여성일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가족관계 불일치 여성 유족들에게는 족보나 비석이 아닌 주변 이웃, 친척들의 증언이 유일한 입증 수단입니다.

유독 홀어멍들이 많은 북촌마을에서 고완순 유족은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유족들이 제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보증인을 자처해 진짜 가족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4.3을 목격한 1세대 여성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고완순 어르신과 함께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영자 4·3 유족 (91세)]
"호적에 올릴 여유가 없었어. 결혼해서 살았다 말았다 할 때 4·3으로 죽어서 호적에 올리지 못했지. 아버지가 희생되니까 너는 모르지.
(언니 치매 걸리지 말고 얘네 가족관계 정정 신청 올릴 때 보증 서주세요.) 보증하지. 나 치매 안 걸리면 그건 보증 앉을게. "

이름 없는 여성 희생자의 비석에 제 이름을 새기고 가족을 찾아주는게 살아남은 자의 소명이고 역사를 바로 잡는 길이라 믿고 있습니다.

[고완순/4.3 유족(85세)]
"살아있으면 살아 있는 값을 해드려야 되잖아요.
그 얼마나 조상 잃고 고생하고 그 많은 긴 세월을 살았는데.. 끝까지 할 겁니다. 저는 몰살된 가족들도 찾을 때까지 제가 머리에 치매 안 걸리고 걸을 수 있는 한, 계속 하겠습니다."

4.3 여성들의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것도 결국 제주의 어멍들이었습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국가 중심의 제도적 질서 하에서 가장 모순을 첨예하게 경험했던 여성이 또는 이 문제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는 그런 장면들을 더러 확인한 점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는 어멍들은 해체된 가족, 공동체 회복이라는 4.3 해결의 주체로서 다시 거듭나고 있습니다.

KCTV 뉴스 김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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