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차별과 설움 속에서도
평생을 바쳐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재일제주인 1세대들.
특히 같은 고향끼리 이뤄진 재일본 친목회는
제주 일본을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가이 지나며 과거 흔적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대교체와 함께 희미해져 가는
재일제주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 봅니다.
김용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에 있는 신발 공장입니다.
과거 밀항선을 타고 넘어온 뒤 평생을 바쳐 일궈온
구좌 출신 1세대 재일제주인의 일터입니다.
이제는 2세들이 대를 잇고 있습니다.
<오영지/재일제주인 2세>
"이쿠노구는 일반인들이 신는 신발을 단가도 싸고 품질도 좋게 많이 만들었거든요. 일본 전국에 판매해왔습니다. "
인근에 있는 신발 공장도 60년 가까이 운영 중입니다.
조천읍 신촌리 친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재일제주인 2세가
지금까지 생업을 유지하며 터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박유규/재일제주인 (신촌리 친목회장)>
"혼자, (혼자 밀항 오신 거예요?) 응 혼자. 어머니만 남겨두고
여기에 아버지가 살고 있었으니, 오라고 하니 중학교 졸업하면서 나왔지.
열심히 일했지. 밤은 늦게 아침은 빨리, 일요일도 놀지 않고. "
일본 이카이노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이 많이 사는
나가가와와 다시마 지역에는
1층에 신발과 고무 등을 만드는 공장 - 창고와
2층에 집이 있는 형태의 소규모 가내수공업이
유독 많았습니다.
밀항이라는 불안정한 신분과 차별 속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은
더욱 서로 의지하며 함께 일했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고향 가족과 마을, 학교로 온정을 보냈습니다.
재일제주인 사회에선
같은 고향 출신 마다 친목회가 만들어졌고
고향과 일본을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박유규/재일제주인 (신촌리 친목회장)>
"국민학교 지으려고 하는데 돈이 없다. 좀 부탁한다 하면 어느 정도 낼 수 있었죠. 학교니까. 그래서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지었죠."
1세대 어르신들이 서서히 세상을 떠나고
자녀들이 일본 사회에 동화되면서 이곳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과거 이민자라는 현실 속에서 끈끈했던 친목회는
이제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발 공장과 고무 공장도 70% 이상 문을 닫았습니다.
<한관순 재일제주인 1세>
"지금부터 10년 전부터 폐업했어요. 그러니까 공장이 없어요.
제가 봤을 땐 10%는 귀국하고 있어요. (왜 귀국하는 거예요?) 여기에서 생활이 곤란하니까..."
친목회가 있었거나 개인 기부자들이 살았던 집,
공장이 있던 과거 주소지 10여 곳을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대부분 없어지거나 자리를 옮겼고, 공원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스탠딩:김용원기자>
"수십 년 세월이 흐르며 재일제주인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3세대 4세대 후손들에게
과거의 기억과 역사는 점점 낯선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씽크:이민남/ 재일본 관서 제주도민협회장>
"일본인화 돼서 제주도에 관한 것, 한국에 관한 것도 잊어버리고
귀화하신 분들이 많아서, 일본식 이름으로 바뀌면 이제 (한국인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거죠.
재일제주인 3세, 4세가 되어도 이 곳 일본으로 건너오신 1세대 분들을
잘 생각해서 제주도에 관한 것을 잊지 말고,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제주를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지만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속에서
역사와 연대의 가치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KCTV 뉴스 김용원입니다.
(영상취재 현광훈 / 자료 제주교육박물관)
김용원 기자
yy1014@kctvjej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