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연좌제 1>평생 삶을 옥죈 사슬
문수희 기자  |  suheemun43@kctvjeju.com
|  2026.03.2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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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의 또 다른 상처는 바로 연좌제입니다.

연좌제의 굴레 속에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과 진학이 막히고
공직 진출은 물론 일상의 선택까지 제약받아야 했던 삶.

하지만 이런 피해는
지금껏 증언에 머물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상황을 뒷받침하는
공적 문서와 기록들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진상 규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습니다.

KCTV는 이번 기획을 통해
제주 4.3 연좌제 피해의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늦었지만 반드시 짚어야 할 과거의 책임과
과제를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오늘 첫 순서로
제주 4.3 당시 아버지가 연루됐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은 물론 남편과 사위들까지
평생을 감시와 차별 속에 살아야 했던 세 자매를 취재했습니다.

문수희 기잡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오 씨 세 자매에게
4.3은
삶을 끊임없이
옥죄어 온 사슬 같은 존재입니다.

1947년, 세화리에서
3.1절 기념대회를 이끌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경찰에 붙잡혀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

억울한 옥살이 끝에 풀려났지만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는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남았습니다.

그날 이후 세 자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경찰은
수시로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이유 없는 감시와 위협 속에 하루도 편히 지낼 수 없었습니다.

<오희숙 / 4·3유족>
“(경찰 때문에) 집이 무서워서 잠을 못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집에서 자고 우리 사형제하고 어머니하고는 안에 골목길 거기 빌려서 자고

모든 생활이 부모 없고, 연좌제에 걸리고 하니까 남들의 손가락질. 남의 집에도 못가요...옛날에는 물든다고 그 사람이 다니면은 자기네도 그렇게 된다고 집에 못 오게 해요."

연좌제의 사슬은
세 자매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를 옭아맸습니다.

첫째 사위는
간첩 사건이 터질 때마다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고

교사였던 둘째 사위는
장인이 4.3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감시 대상으로 분류됐습니다.

셋째 사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큰 돈을 들여 기술을 배웠지만
취업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해야 했습니다.

<오기숙 4·3유족>
“소 키우던 걸 한마리 팔아서 부산 가서 요리학원 다니면서 배웠어요. 외항선 타려고 가니까 연좌제인지 뭔지 신원조회에 걸려서 나 때문에 못탄거죠.

그 당시에는 연좌제가 뭔지 뭐 때문에 신원조회를 받는지도 몰랐죠. 무조건 그냥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걸려서 뭘 못하는 구나...연좌제가 뭔지 뭐가 뭔지 몰랐어요"

이들에게 연좌제는
한순간의 사건이 아닌 삶 전체를 따라다닌 지독한 사슬이었습니다.

취업과 결혼, 인간관계까지
보이지 않는 기준이 평생을 가로막았습니다.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 받아야 했던 평생의 상처.

연좌제라는 감옥 안에서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KCTV 뉴스 문수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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